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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장관후보자 검증] 안 사는 집에 세금 더 매기자던 사람, 본인이 그 집에 안 살고 있었다"
author: "VibeTimes"
published: "2026-09-03T02:00:22.039Z"
section: "politics"
tags: ["이형일", "경제부총리", "종부세", "인사청문회", "재정경제부"]
language: "en"
url: "https://vibetimes.co.kr/en/news/cmtkvo9vr1jk4p75ybm6xvb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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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관후보자 검증] 안 사는 집에 세금 더 매기자던 사람, 본인이 그 집에 안 살고 있었다

지난달 30일 장관 후보자 6명이 한꺼번에 지명됐다. 그중 한 명은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즉 경제 컨트롤타워다.

본지가 국내 주요 커뮤니티 게시글을 집계한 결과, 8월 30일 이후 장관 인사를 다룬 글 1,694건 가운데 이형일 부총리 후보자를 언급한 글은 **29건, 1.7%**였다. 같은 기간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1,228건, 72.5%였다.

경제부총리 후보자에 대한 검증이 사실상 비어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들여다봤다.

## 그가 만든 세제의 적용 대상이 그였다

이 후보자는 재정경제부 1차관으로서 올해 세제개편안 실무를 주도했다. 개편안의 핵심 가운데 하나가 **종합부동산세 1주택 기본공제를 거주 여부에 따라 차등화**하는 것이었다.

실거주하는 1주택자는 공제 혜택을 유지하거나 넓히고, 살지 않으면서 집만 보유한 1주택자는 기본공제를 **12억원에서 9억원으로 축소**한다는 안이었다. 전년 대비 보유세 부담 상한선도 150%에서 200%로 높이기로 했다.

정부의 논리는 분명했다. 집은 사는 곳이지 갖고 있는 자산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후보자 본인이 **비거주 1주택자**다.

## 3~4년째 남의 집에 살면서 자기 집은 세를 놨다

공개된 재산 신고 내역을 종합하면 이 후보자는 2021년 시점에 경기 과천의 전용 54㎡ 아파트를 배우자와 공동명의로 보유하면서 이를 임대하고 있었다. 본인은 평촌신도시의 전용 123㎡ 아파트에 전세로 거주했다.

이 구조는 이후에도 이어졌다. 2024년과 2025년에도 과천 아파트는 임대 상태였고, 본인은 과천과 동작구의 다른 아파트에 전세로 살았다. **최소 3~4년간 비거주 1주택자 상태**였던 셈이다.

자기가 불이익을 주기로 설계한 범주에 자기가 속해 있었다.

## 그 조항은 결국 철회됐다

비거주 1주택자에 대한 과도한 차별이라는 비판이 커지자,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해당 내용을 뺀 개편안을 확정했다. 공제 축소안은 시행되지 못했다.

이 후보자는 지명 이후 "실거주 중심의 주택 정책 기조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 종부세에 대해서도 "실거주와 비거주 사이에 차이는 둬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국회 지적은 수용하겠다고 했다.

본인 상황에 대해서는 이렇게 해명했다.

> "보유 중인 과천 아파트는 재건축이 진행돼 멸실 중인 상황을 이해해 주시면 좋겠다."

재건축으로 집이 헐리는 중이라 실거주가 불가능했다는 뜻이다. 청문회에서 설명하겠다고 덧붙였다.

## 해명이 닿는 구간과 닿지 않는 구간

멸실은 사실이라면 실거주를 못 할 사유가 된다. 다만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 남는다.

**첫째, 기간이다.** 재건축 멸실은 통상 사업 막바지 국면에서 일어나는 일이지 3~4년 내내 지속되는 상태가 아니다. 2021년부터 이어진 임대 상태 전체가 멸실로 설명되는지는 별개 문제다.

**둘째, 임대다.** 멸실 중이어서 살 수 없는 집이라면 세를 놓기도 어렵다. 재산 신고에 임대 사실이 기재된 시점과 멸실 시점이 겹치는지 확인돼야 한다.

**셋째, 형평이다.** 설령 본인 사유가 정당하더라도, 그가 설계한 제도는 사유를 묻지 않고 비거주 1주택자 전체에 일괄 적용되는 방식이었다. 재건축이든 직장이든 간병이든 구분하지 않았다. 자기 사례에서는 사정을 봐달라고 하면서 제도는 사정을 보지 않게 만든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 성립한다.

이 세 가지가 청문회에서 확인돼야 할 지점이다.

## 관료로서의 이력

이 후보자는 1971년 대구에서 태어나 1992년 행정고시 36회로 공직에 들어섰다. 재무부에서 시작해 외환위기 직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과 공적자금관리위원회를 거쳤고, 기획재정부 경제분석과장·종합정책과장·경제정책국장 등 경제정책국 요직을 두루 지냈다.

기재부 내부에서 '닮고 싶은 상사'로 세 차례 뽑혔다는 사실이 여러 매체에 소개됐다. 거시경제와 금융에 밝은 정통 경제관료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동시에 차관에서 부총리로 직행하는 인선을 두고 무게감이 떨어진다거나 경제 정책이 대통령실 직할로 운영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 검증받지 않은 경제사령탑

이 후보자를 둘러싼 커뮤니티 반응에서 가장 많이 읽힌 글은 검증 기사가 아니었다. 대통령이 그에게 "추석 물가 못 잡으면 장관 지명을 취소하겠다"고 농담했다는 기사였다.

경제부총리는 예산과 세제, 물가와 부동산 금융을 총괄한다. 이번 개각에서 가장 큰 권한을 넘겨받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 자리의 후보자가 자기가 만든 세제의 적용 대상이었다는 사실은, 지명 나흘이 지나도록 온라인 여론의 1.7%만 알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