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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와룡산 유골은 24년 전 실종된 개구리 소년이었다"
author: "VibeTimes"
published: "2026-09-25T17:10:02.299Z"
section: "society"
tags: ["김태룡", "조호연", "대구", "와룡산", "대한민국"]
language: "en"
url: "https://vibetimes.co.kr/en/news/cmuh7qs3327886gp1gpiiyyy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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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룡산 유골은 24년 전 실종된 개구리 소년이었다

24년 전 대구 와룡산에서 발견된 유골이 1991년 3월 26일 사라진 '개구리 소년' 5명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아이들은 지방선거 임시공휴일인 그날 오전 와룡산으로 향했고, 처음 함께 놀던 6명 중 김태룡 군만 부모의 만류로 집으로 돌아갔다.

사건 당일 와룡산 기슭에 살던 주민이 오전에, 아이들의 친구들은 정오 무렵 산 입구에서 아이들을 목격했다는 증언이 수사 과정에서 중요한 단서로 거론됐다.

## 수십만 명 수색에도 밝혀지지 않았다

부모들은 이날 오후 7시 50분께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1991년 5월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특별지시에 따라 군과 경찰이 수색에 동원됐고, 대구지방경찰청 산하에 수사본부가 설치됐다. 수사본부는 1996년 해체될 때까지 연인원 약 30만 명을 투입해 산악수색과 일제 검문검색을 벌였다. 접수된 제보만 570여건에 달했지만 결정적인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전화카드와 담뱃갑, 만화책, 우유·과자 포장 등에 아이들의 사진이 실렸고 현상금이 걸린 전단이 전국에 배포됐지만, 사건은 장기 미제로 접어들다가 유골 발견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유골이 발견된 장소는 과거 육군 제50보병사단 사격장 부지로 확인됐다.

유골 발견 이후에는 경찰의 수사 과정에 대한 지적이 제기됐다. 경찰이 법의학 전문가의 도움 없이 곡괭이 등으로 유골을 발굴하면서 현장이 훼손됐다는 것이다. 경찰은 유골이 한데 엉켜 있었고 구덩이 흔적이 없다는 점을 들어 아이들이 길을 잃고 저체온증으로 숨졌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러나 감식을 맡은 경북대 법의학팀은 다른 판단을 내놓았다. 아이들의 두개골 등에서 손상 흔적이 확인되면서 둔기나 흉기에 의한 타살 가능성이 제기됐고, 범행 도구로는 용접 망치가 유력하게 거론됐다. 그럼에도 범행 경위와 범인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고, 2003년 대구경찰청 수사본부가 다시 해체되면서 수사는 장기 미제로 남았다.

유족들은 공소시효 연장과 폐지를 요구하며 진상 규명을 촉구했지만 2006년 3월 26일 공소시효가 만료됐다. 경찰은 이후에도 사건을 들여다봤으나 2015년 내사를 종결했다. 유족 측은 초동수사 과정에서 중요한 단서가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재수사를 요구했고, 2019년부터 대구경찰청 장기미제사건 수사팀이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아이들이 사라진 지 35년이 지났지만 사건의 전모는 밝혀지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