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출 93조 늘었는데 적자는 줄어든 신기한 예산…비밀은 조세부담률 3%p에 있다
정부가 9월 3일 국회에 넘긴 2027년도 예산안은 두 얼굴을 하고 있다. 총지출 820조 9천억 원, 전년보다 93조 원(12.8%) 늘어난 역대 최대 규모다. 지출 증가율이 두 자릿수를 기록한 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그런데 정부가 내세우는 재정지표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3.9%에서 -0.1%로, 국가채무비율은 51.6%에서 48.3%로 개선된다. 지출을 크게 늘리면서도 살림살이가 좋아 보이는 이 계산의 안쪽을 뜯어볼 필요가 있다.
마법이 아니라 세수다
적자 축소의 주인공은 절약이 아니다. 총수입이 올해보다 205조 6천억 원(30.4%) 늘어난 880조 8천억 원으로 잡힌 덕분이다. 기획예산처는 발표문에서 "반도체 호황 등에 따른 소중한 세수"를 대혁신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숫자로 보면 이 세수가 어느 정도인지 드러난다.
| 항목 | 2026년 | 2027년(안) |
|---|---|---|
| 총지출 | 727.9조 원 | 820.9조 원 (+12.8%) |
| 관리재정수지(GDP 대비) | -3.9% | -0.1% |
| 국가채무비율(GDP 대비) | 51.6% | 48.3% |
| 조세부담률(GDP 대비) | 18.8% | 22.5% |
국민과 기업이 낸 세금의 경제 규모 대비 비중, 조세부담률이 한 해에 3.7%포인트 오른다. 재정지표 개선은 정부가 줄여서가 아니라 걷어서 만든 숫자다.
반도체 사이클 위에 세운 살림표
문제는 이 돈의 출처다. 수출 절반이 반도체인 한국에서 메모리 호황은 법인세·소득세를 밀어 올렸고, 정부는 이 반짝 세수를 162조 3천억 원 규모 '미래대응기금'의 밑천으로 쓴다. 청년·성장동력·지방·교육 등 4개 분야에 45조 4천억 원을 배정했다. 반도체는 사이클 산업이고, 세계 경제가 꺾이면 세수 전망은 곧바로 흔들린다. 지출은 한 번 늘리면 되돌리기 어렵지만, 세수는 그렇지 않다는 게 이 예산안의 구조적 취약점이다.
국회 곁눈질 없이 여는 지갑
더 쟁점이 되는 건 통제 장치다. 한국경제 보도에 따르면 기금 사업비의 30%까지 국회 재의결 없이 증액할 수 있어 '상시 추경'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은 이 기금을 "편법 저수지", "짝퉁 슈퍼 예비비"라고 불렀다. 연중 별도 심의 없이 기금운용계획을 조정할 수 있는 구조 탓에 정부 재량이 과도하다는 것이다. 162조 원이 세입·세출 예산 밖 통로로 흐를 경우 국회의 예산 심의권은 형해화된다.
정부 쪽 논리도 들어보면
정부 입장은 분명하다. 단년도 예산으로는 반도체 호황 같은 일회성 세수를 미래 투자로 전환하기 어렵고, 기금이 없으면 돈이 소비성 지출로 흩어진다는 논리다. 2030년까지 관리재정수지를 GDP 대비 -3% 이내, 국가채무비율을 49% 수준으로 관리하겠다는 중기 목표도 제시했고, 국회 사후통제를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참여연대가 첨단산업 편중을 문제 삼은 것과 달리, 성장 부문에 재원을 몰아주는 선택 자체는 시장 논리에 부합한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결국 따져야 할 건 숫자 하나다. 조세부담률 22.5%가 일시적 첨점인지 새로운 바닥인지. 정부는 총수입이 2030년 984조 6천억 원까지 연평균 9.9% 늘 것으로 본지만, 이 전망이 빗나가는 순간 남는 건 93조 원 늘어난 지출 구조다. 100일 정기국회에서 이 예산안을 추상이 아니라 항목으로 심사할 유일한 기관은 국회다. 162조 원 기금의 통제 장치를 어디까지 조이는지가 이번 정기국회의 실력을 가른다.
분석 근거: 대한민국 정책브리핑(korea.kr), 기획예산처 2027년 예산안 발표문, 한국세정신문, KBS 뉴스, 한국경제, 뉴스1. 공개 데이터·보도에 근거한 분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