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위로', 하이닉스는 '옆으로'…HBM 다음 판이 갈렸다
지난 14일 서울 코엑스에서 막이 오른 제28회 반도체대전(SEDEX 2026)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지금 파는 제품보다 '다음에 팔 메모리'를 전면에 내걸었다. HBM 왕좌다툼이 채 끝나기 전에 HBM 다음의 자리를 두고 판을 먼저 깠다. 방향은 정반대다.
병목은 속도에서 '거리'로 옮겨갔다
SK하이닉스 안현 개발총괄 사장은 기조연설에서 "메모리 계층 간 데이터 이동 자체가 가장 중요한 병목이 됐다"고 짚었다. AI 추론 시대에는 컨텍스트가 길어지면서 KV 캐시가 HBM·D램·SSD로 흘러내리고, 데이터가 움직이는 거리가 곧 전력과 지연시간이 된다. 그는 AI 인프라 성능 규모가 2030년까지 올해보다 약 20배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읽기가 쓰기보다 약 30만배 많은 추론 모델 특성상, 쓰기에 약한 낸드플래시도 다시 무기가 된다.
삼성은 '위로', 하이닉스는 '옆으로'
삼성전자는 GPU 위에 HBM을 수직으로 쌓는 'zHBM'을 목업으로 전시했다. HBM5 대비 GPU당 최대 8배 성능, 전력 대비 성능 최대 3배, 열 저항 절반 이하가 목표다(8월 FMS 2026 첫 공개). SK하이닉스는 HBM과 D램 사이에 아예 새 계층을 끼워 넣는 'HBF(고대역폭플래시)'를 꺼냈다. 같은 세대 HBM 대비 대역폭은 절반이지만 용량은 약 10배가 목표다.
| 구분 | 삼성전자 zHBM | SK하이닉스 HBF |
|---|---|---|
| 접근 방식 | GPU 위 HBM 수직 적층 | HBM–D램 사이 신규 계층 |
| 목표 성능 | HBM5 대비 최대 8배·전력효율 3배·열저항 절반 이하 | 대역폭은 절반·용량 약 10배 |
| 일정 | 목업 전시 단계 | 2027년 1월 최종 규격, 연말 출시 목표 |
승부처는 성능이 아니라 '규격'이다
SK하이닉스는 샌디스크와 표준화에 착수해 올해 8월 첫 규격을 공개했고, 내년 1월 구글 등이 참여한 가운데 HBF 최종 규격을 확정한다. 삼성은 zHBM에 그치지 않고 4나노 공정 HBM4E 베이스다이와 초고집적 패키징까지 묶은 통합 솔루션으로 맞선다. 메모리 계층에 새 자리를 하나 더 만드는 순간, 그 자리의 규격을 쥔 쪽이 시장을 배분한다. 반도체판에서 제조 역량보다 규격이 오래 남는 힘이었다.
반론: 당장 버는 돈은 여전히 HBM4E다
신중한 시각도 있다. 현세대 수요가 여전히 폭등 중이어서다. 양사는 핀당 최대 16Gbps의 HBM4E를 나란히 전시했고(삼성 5월, SK하이닉스 6월 엔비디아 샘플 출하), 업계에는 HBM 쏠림에 따른 메모리 공급 부족이 2028년까지 이어진다는 전망까지 나왔다(머니투데이 보도). 신규 계층의 수요는 아직 검증 전이고 표준 확정은 늦어질 수 있다. 이번 분기 실적을 만드는 건 차세대가 아니라 현세대다.
중국이 따라오는 속도가 마감시한이다
중국 CXMT는 올해 말 4F² D램 상용화가 목표고, 삼성 송재혁 최고기술책임자는 "열심히 개발하고 있다"고 맞받았다. 범용 D램을 내주면서 상위 계층을 쥐는 것이 한국 메모리의 생존 방정식이란 뜻이다. 삼성은 용인 국가산단 약 360조원 투자(2029년 10월 첫 라인 가동)로 물량을, SK하이닉스는 샌디스크·구글 동맹으로 규격을 잡는다. 두 전략 중 하나는 틀릴 수 있지만 아무것도 걸지 않는 쪽은 확실히 진다. 한국 반도체의 몫은 이번 코엑스 전시장에서 이미 배분되기 시작했다.
분석 근거: 전자신문(SEDEX 2026 취재), 뉴스핌, 헤럴드경제, 파이낸셜뉴스(연합뉴스 배포), 머니투데이. 공개 데이터·보도에 근거한 분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