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으면서 판다, 엔비디아 칩의 두 얼굴
엔비디아의 AI 칩 H200은 지금 워싱턴에서 두 개의 얼굴을 하고 있다. 한쪽은 국가안보를 이유로 대중(對中) 수출을 통제하는 규제 당국의 얼굴이고, 다른 한쪽은 그 수출액의 4분의 1을 떼어가는 상인의 얼굴이다. 같은 칩을 두고 통제와 거래가 동시에 벌어지는 이 장면은 반도체 패권 경쟁의 무게중심이 안보 논리에서 수익 논리로 옮겨가고 있다는 신호다.
봉쇄가 지분 계약으로 바뀐 1년
트럼프 행정부는 2025년 8월 중국 시장용으로 성능을 낮춘 H20 칩의 수출을 허용하며 매출의 15%를 미국 정부에 넘기는 조건을 걸었다. 넉 달 뒤인 2025년 12월에는 더 성능이 높은 H200까지 대상을 넓히면서 정부 몫을 25%로 올렸다. CNBC와 알자지라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시진핑 주석과의 협상 카드로 직접 언급했다. 수출통제가 안보 심사를 통과한 기업만 거래하는 허가제에서, 국가가 로열티를 챙기는 라이선스 사업으로 성격이 바뀐 셈이다.
그래도 못 넘는 벽, 업체당 7만5000개
돈을 받는다고 문을 활짝 연 것은 아니다. 한국경제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2026년 3월 H200 수출 물량을 기업당 7만5000개로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했고, 이는 알리바바·바이트댄스 등이 원하는 주문량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파이낸셜뉴스는 실제 상무부 허가서 대비 선적 물량이 극소량에 그쳤다고 전했다. 매출은 나눠 갖되 물량은 조인다는 이중 잣대가 정책의 실제 얼굴에 가깝다.
베이징이 자국 기업에 채운 족쇄, 그리고 풀어준 이유
중국은 2025년 9월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을 통해 알리바바·바이트댄스 등에 엔비디아 칩 구매와 기존 주문 취소를 지시했다. 화웨이 어센드로 대표되는 자국산 대체를 밀어붙이려는 조치였다. 그런데 2026년 7월, 미국의소리(VOA) 중국어판 보도처럼 베이징은 선도 AI 기업에 한해 H200의 제한적 구매를 다시 허용했다. 화웨이의 클라우드매트릭스 384가 초거대모델 학습 효율에서 엔비디아 대비 85% 수준까지 올라왔다는 발표에도 불구하고, 최첨단 학습과 초대형 클러스터 안정성에서는 여전히 격차가 있다는 뜻이다.
낀 한국—허가 잃은 공장, 반사이익 없는 리스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은 2025년 12월 31일자로 '검증된 최종사용자(VEU)' 지위를 잃었다. 장비를 건별 허가 없이 들여오던 특혜가 사라지고, 지금은 1년짜리 허가를 매년 새로 받는 처지다. SK하이닉스는 D램·낸드의 30~40%를, 삼성전자는 낸드의 3분의 1가량을 중국에서 생산한다.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두 회사는 향후 장비 유지·보수까지 막힐 가능성에 대비해 중국산 장비를 시험하고 있다. 미국의 대중 압박이 정작 동맹국 기업을 중국 공급망 쪽으로 떠미는 역설이다.
칩보다 무서운 건 서비스 조항
한국 반도체 업계가 주목해야 할 대목은 H200 수출 허가 헤드라인이 아니라 장비 서비스·부품 조항이다. 매출 지분을 받는 미국 정부 입장에서 대중 수출은 이미 협상용 자산이 됐고, 그 협상 테이블 위에 한국 기업의 중국 공장 운영권이 함께 올라가 있다. 자국산 대체가 급한 중국도, 로열티가 급한 미국도 각자의 논리로 움직일 뿐 한국의 사정을 우선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을 전제로 대응 전략을 짜야 한다.
| 시점 | 조치 |
|---|---|
| 2025.08 | H20 대중 수출 허용, 매출 15% 미국 정부 귀속 |
| 2025.09 | 中, 알리바바·바이트댄스 등에 엔비디아 칩 구매·주문 취소 지시 |
| 2025.12 | H200 대중 수출 허용, 매출 지분 25%로 상향 |
| 2025.12.31 | 삼성전자·SK하이닉스 중국 공장 VEU 지위 만료 |
| 2026.03 | 美, H200 수출 물량 업체당 7만5000개 제한 검토 |
| 2026.07 | 中, 자국 선도 AI기업에 H200 제한적 구매 재허용 |
| 2026.08 | 美, 역외 우회 접근 경로 조사 착수 |
분석 근거: CNBC, Al Jazeera, Bloomberg, 한국경제, 파이낸셜뉴스, 로이터(Investing.com), VOA 중국어판 보도. 공개 데이터·보도에 근거한 분석입니다.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일정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