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는 바뀌었는데, 소송은 늘었다
상법 개정은 지금 두 개의 성적표를 동시에 받아들고 있다. 이사회 의사록은 두꺼워졌고 법무팀은 바빠졌지만, 정작 기업들이 더 크게 느끼는 것은 주주대표소송이라는 청구서다. 시행 1년, 대한상공회의소가 상장기업 300곳에 물어본 결과가 그 간극을 숫자로 보여준다.
84.3%가 바뀌었다는데, 뭐가 바뀌었나
대한상의가 2026년 7월 12일 발표한 조사에서 상장기업 300곳 중 84.3%가 이사회 운영방식에 변화가 있었다고 답했다. 변화가 없었다는 응답은 15.7%에 그쳤다. 구체적으로는 법무·준법팀 중심 검토 절차 신설·강화가 47.0%로 가장 많았고, 외부 전문가 자문 확대(45.7%), 이사회 의사록 상세 작성(43.7%), 안건 사전 검토 절차 강화(39.7%)가 뒤를 이었다. 지배구조 형식은 촘촘해졌다는 뜻이다.
| 항목 | 응답 비율 |
|---|---|
| 이사회 운영방식 변화 있음 | 84.3% |
| 법무·준법팀 검토 절차 강화 | 47.0% |
| 외부 전문가 자문 확대 | 45.7% |
| 소송 리스크 우려 증가 | 53.7% |
| 긍정적 영향(책임성·투명성) | 39.6% |
| 부담 증가(비용·의사결정 지연) | 22.4% |
절반이 넘는 기업이 소송을 걱정한다
같은 조사에서 53.7%는 주주대표소송이나 손해배상청구 위험이 전보다 커졌다고 답했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넓힌 개정 조항이 원인이다. 가장 필요한 후속 과제로는 충실의무 가이드라인 구체화가 37.3%로 1위에 올랐다. 규범은 확대됐는데 판단 기준은 아직 따라오지 못했다는 신호다.
9월과 그 이후, 규제 카드가 더 남아 있다
자산총액 2조원 이상 대규모 상장사는 2026년 9월 10일 이후 최초로 이사 선임 주주총회를 열 때부터 집중투표제를 정관으로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 2026년 3월 6일 시행된 자기주식 의무소각 제도까지 겹친다. 취득 후 1년 내 소각이 원칙이고, 예외적으로 보유하려면 매년 주주총회 승인을 받아야 한다. 지분 방어 수단이던 자사주가 더는 편한 카드가 아니게 됐다.
경총의 반론, 그리고 절반의 긍정론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상법이라는 포괄 규정으로 모든 기업을 묶는 방식이 소송 대응력이 약한 중소기업에 부담이 크고, 이사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 직접 규정한 해외 입법례를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성균관대 한 명예교수는 개정의 실질 수혜자가 소수주주가 아니라 행동주의 펀드 같은 자본이 될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다만 응답 기업의 39.6%는 의사결정 책임성과 지배구조 투명성이 실제로 좋아졌다고 평가했다. 규제가 순전히 헛발질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형식은 국제표준에, 청구서는 이사회로
지배구조 형식만 보면 한국 상장사는 짧은 시간에 국제 기준에 가까워졌다. 문제는 그 형식을 채운 대가가 소송 리스크와 컴플라이언스 비용이라는 실질 청구서로 돌아온다는 점이다. 가이드라인 없는 확대 입법은 예측 가능성을 낮추고, 예측 가능성이 낮은 시장은 결국 자본 조달 비용으로 청구서를 다시 쓴다.
분석 근거: 대한상공회의소 상장기업 설문조사(2026.7.12 발표), 법률신문, 헤럴드경제, 머니투데이, 허핑턴포스트코리아 보도. 공개 데이터·보도에 근거한 분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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