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앞 어르신이 설명서보다 먼저 전원을 켜야 한다
로봇은 어르신의 손으로 켜져야 한다. 어르신이 로봇을 직접 만져 성공을 경험하면 새 기술에 대한 자신감이 커지는데, 캐나다 한 연구팀이 2026년 3월 발표한 논문에서 노인 18명의 조립 실험을 통해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 미디어학 박사인 최홍규 EBS 연구위원은 15일 시니어 인공지능(AI) 교육의 방향을 짚는 칼럼에서 어르신이 로봇을 직접 켜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시니어 AI 교육이 대개 두려움을 달래는 데서 출발하지만, 두려움이 줄었다고 스스로 손을 움직이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로봇처럼 몸을 가진 AI가 가정으로 들어오는 시대에 교육이 먼저 길러야 할 것은 지식이 아니라 효능감, 곧 '나도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라는 설명이다.
효능감을 키우는 건 안내자가 아니라 해낸 경험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실험 결과가 있다. 캐나다의 한 연구팀이 2026년 3월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노인 18명을 두 집단으로 나눠 운동기구를 조립하게 하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안내했다. 한 집단은 정해진 명령어를 말하면 조립 단계와 부품을 읽어주는 연구팀 제작 음성 비서(조립 진행 상황 확인 화면 포함)의 안내를 받았고, 다른 집단은 연구자가 미리 녹음한 사람의 목소리를 요청에 맞춰 재생하는 음성 통화 방식으로 안내받았다. 두 방식의 안내 내용은 같았고, 조립은 노인이 직접 수행했다.그 결과 조립을 마친 노인 18명 모두에서 조립 효능감과 일상의 어려움에 대처한다는 일반 효능감이 함께 올랐고, 안내 방식에 따른 점수 차이는 없었다. 그러나 차이는 한 달 뒤에 나타났다. 음성 비서 안내를 받은 쪽은 높아진 조립 효능감이 한 달 뒤에도 유지된 반면, 음성 통화 쪽은 오른 점수가 다시 줄었다. 일반 효능감은 두 방식 모두 한 달 뒤 오름폭이 유지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효능감 상승을 조립을 직접 해낸 성공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한 달 뒤 차이는 안내자가 사람이 아닐 때 노인이 조립을 스스로 이끌었다고 느꼈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최 연구위원은 이 결과에서 효능감의 근원을 읽어낸다. 효능감을 키우는 것은 안내자의 정체가 아니라 끝까지 해낸 성공 경험이라는 것이다. 다만 성공 한 번은 일반 효능감까지 지속시키지 못했고, 이 때문에 첫 성공을 한 번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고 최 연구위원은 강조했다. 효능감은 성공을 자기 것이라 느낄 때 오래간다는 분석이다.
피지컬 AI 시대에는 이 점이 더 무거워진다. 화면 속 앱은 뒤로 가기 버튼이 있지만, 바닥의 로봇은 잘못 조립하면 덜컹거리며 멈춰 서듯 실패가 물건으로 남는다. 앞으로 어르신 곁에 오는 기계는 상자에서 꺼내 조립하고 전원을 연결해야 하는 물건이어서 첫 관문이 조작보다 앞선 설치에 있다. 연구팀은 로봇은 설치가 까다롭고 조립이 안 되면 쓸 수 없다고 기술했다.
최홍규 연구위원은 시니어 교육에서 설명을 먼저 하고 손을 나중에 쓰게 할 것이 아니라, 손을 먼저 쓰게 하고 설명은 곁에서 거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안내자는 말로만 곁을 지키며 대신 해주지 말고, 작은 과제 하나를 어르신의 손으로 끝까지 마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어르신께 건넬 첫 질문은 "쓸 줄 아신인가?"가 아니라 "해보시겠인가?"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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