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쥔 이재명이 권력 줄이는 개헌 나섰다
스스로 줄이는 권력, 낯선 출발점
이재명 대통령이 제 손으로 대통령제 수술대에 메스를 댔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에게 쏠린 권한을 국무총리와 국회 쪽으로 나누는 이른바 권력분산 개헌의 필요성을 공식 확인했다. 북·미 대화가 재개되면 한국이 물꼬를 트는 조율자, 즉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맡겠다는 구상도 함께 내놨다.
"대통령 권한 분산 개헌 필요…페이스메이커로 北美대화 촉진"
권력을 쥔 사람이 그 크기를 스스로 줄이는 데 앞장서는 것은 헌정사에서 낯선 광경이다. 권력은 저절로 비워지지 않는다는 게 정치의 오랜 속설이어서 이번 발언은 앞으로의 정치 일정에 무거운 변수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선언과 완성은 다른 문제다. 개헌은 국회 재적 3분의 2, 곧 300석 중 200석의 찬성과 국민투표 승인이라는 이중 관문을 넘어야 비로소 제도가 된다.
협상 전제로 내세운 '연임 불가'
최대 걸림돌은 숫자보다 정치적 계산이다. 개헌안이 4년 중임제 방향으로 임기 구조를 바꿀 경우 현직에게 재선의 문이 열릴 수 있다는 관측이 야권을 자극하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페이스북에서 김문수 대표가 이 대통령으로부터 '연임 불가' 선언을 받아와야 한다고 촉구했다. 개헌 협력의 대가로 현직의 재선 포기를 요구하는 셈이다.
여당 쪽에서는 분산 실험이 행정에서 먼저 움직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국무총리실 산하 경찰개혁기구 설치를 지시했다. 국무회의에서는 "경찰의 기강 해이, 무책임의 문제가 심각하다"며 경찰 개혁을 주문했다. 치안 감독의 축을 대통령실 밖으로 옮기는 시도로, 법을 고치기 전에 행정 절차로 권력 분산을 먼저 증명하겠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지난 25일 청와대 만찬에서 김민석 민주당 신임 대표와 한병도 원내대표 등 지도부와 2시간 20분가량 회동한 것도 당정 협력 체제를 개헌 국면에 맞춰 점검한 것으로 보인다.
개헌과 맞물리는 북·미 외교
외교는 이번 구상의 또 다른 축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합훈련 축소 추진과 정상회담 모색이 북·미 대화 재개로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이 대통령은 말했다. 한반도 정세가 다시 움직이는 국면을 겨냥한 발언이다. 앞서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종전 문제도 거론했다. 우려도 있다. 정전협정 1조가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를 규정하고 있어 종전 선언이 남북 현장 관리의 법적 근거를 흔들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외교와 개헌을 한 세트로 묶는 계산이 엿보인다. 북·미 사이에서 조율자 위상을 세우면 취임 후 정치적 자산이 두터워지고, 그 자산은 국민투표를 밀어 올리는 연료로 쓸 수 있다. 뷰리핑 여론조사 기준 37.4%인 현재 지지율을 감안하면 외교 동력 확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에 가깝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200석의 산과 시간표
여권 단독 의석으로는 발의 선인 200석에 닿지 않는다. 국민의힘 동의 없이는 협상 테이블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구조다. 야당이 재선 포기를 전제로 내세우는 이상 개헌안 문안, 시행 시기, 이 대통령의 연임 여부가 한 패키지로 묶여 협상될 공산이 크다. 국민투표는 투표율 확보를 위해 기존 선거일과 겹치는 편이 유리하다. 2028년 총선이나 2030년 지방선거와 묶는 설계가 자연스러운 후보로 꼽힌다.
공자는 극복할 어려움을 먼저 헤아리는 사람이 성공에 이른다고 했다. 이 대통령의 개헌 구상 역시 비전의 크기보다 200석 확보와 '연임 불가' 요구라는 두 난제를 어떻게 다루느냐에서 성패가 갈릴 것으로 전망된다. 자기 축소를 건 선언이 제도로 완성될지 선언에 그칠지는 향후 몇 달 간 여야 접촉의 밀도가 미리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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