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AI 스펠북, 계약검토 10시간을 1시간으로
법률AI 회사 스펠북이 계약 검토를 AI에 맡긴 뒤, 계약 한 건에 들어가는 변호사 시간이 10시간에서 1시간으로 줄었다. 10시간은 사실상 하루 근무분이다. 다만 이 숫자는 AI 모델을 파는 앤스로픽이 공개한 자사 고객사례 기준이어서 제3자 검증은 아니다. 같은 사례집에는 고객들이 같은 검토를 서너 번은 돌려야 문제를 전부 찾겠다고 불평했다는 대목도 나온다. 줄어든 시간과 늘어난 검수 사이에서 무엇이 남는지 따져봤다.
변호사가 문서를 열기 전에 검토는 이미 시작된다
스펠북은 2022년 출시된 계약 업무용 AI다. 앤스로픽이 공개한 사례 기준으로 80개국 5,000개 로펌과 기업 법무팀이 쓰며, 고객 목록엔 LG, 드롭박스, 이베이가 들어 있다. 일하는 방식은 이렇다. 변호사가 마이크로소프트 워드로 계약서를 열기 전에 AI가 메일과 슬랙, 영업시스템에서 계약서를 가져오고, 위험 조항에 표시를 하고, 수정안까지 만들어 둔다. 검토 화면에만 복잡도에 따라 갈아 끼우는 에이전트(스스로 일 처리하는 AI 프로그램) 설정이 15종이다. 한 달 처리량은 계약 53만 건, 변호사 질의 채팅 70만 건이다. 스펠북 공동창업자는 "파트너가 시간당 1,000달러를 청구하는 대형 로펌에서는 계약 한 건이 1만 달러짜리 문서였다"고 설명했다.
돈에 손대는 쪽은 승인 버튼을 사람에게 남겨뒀다
같은 사례집에 은행업 쪽 숫자도 있다. 유럽 8개 시장에서 60만 개 기업이 쓰는 중소기업용 은행·회계 서비스 콘토다. 2025년 11월 15명 규모의 AI 팀이 꾸려지고 첫 에이전트가 나오기까지 여섯 주가 걸렸다. 월말 급여 작업이 대표 사례다. 종업원 15~20명의 급여 명세서를 한 번에 끌어놓으면 AI가 송금 준비를 전부 끝내고, 사장이 승인 한 번으로 한꺼번에 보낸다. 회사 발표 기준으로 급여 이체 준비가 5배, 송장 작성이 3배, 이체가 2배 빨라졌다. 고객 한 명이 500장 넘는 월 송장을 한 번에 뽑은 사례도 있다. 단 돈은 사람이 최종 승인하기 전엔 움직이지 않는다. 10만 유로짜리 이체를 AI에 맡긴 사례도 승인은 고객 몫이었다. 분석업체 포레스터가 콘토 의뢰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 앱의 고객은 평균 월 8시간을 재무 행정에 쓴다.
숫자만 나란히 놓으면 보이는 것
| 회사 | 붙인 업무 | 지표 | 변화 | 출처 |
|---|---|---|---|---|
| 스펠북 | 계약 검토·수정 | 건당 변호사 시간 | 10시간→1시간 | 앤스로픽 고객사례 |
| 스펠북 | 계약 검토 | 처리량 | 월 53만 건 | 앤스로픽 고객사례 |
| 콘토 | 월급 이체 준비 | 소요 시간 | 5배 단축 | 앤스로픽 고객사례 |
| 콘토 | 고객 송장 작성 | 소요 시간 | 3배 단축 | 앤스로픽 고객사례 |
둘 다 앤스로픽 발표라는 점을 빼면 공통점이 하나 있다. AI가 반복 준비를 가져가고 사람이 승인선에 선다는 구조다.
반론: 줄어든 시간은 검수 창구로 옮겨갈 뿐이다
10배라는 숫자를 흔는 증거는 사례집 안에도 있다. 스펠북은 고객들이 "세 번 네 번 돌려야 전부 찾겠다"고 하자 검토 모델을 갈아끼웠고, 지금도 같은 검토를 열 번 반복해 찾는 문제가 매번 같은지 점수를 매긴다. 즉 10배의 전제는 한 번에 문제를 다 찾는 일관성이고, 그 일관성은 샀다는 게 아니라 계속 사고 있는 것이다. 해외 개발자 커뮤니티 레딧의 익명 실무자 글도 방향이 같다. 이 글쓴이는 AI가 코드를 만들어주는 시늉만 보고 썼다가 "매 단계를 검토하느라 의사결정 체력이 다 닳는다"고 했다. 생성은 짧아져도 검수는 길어지는 셈이다. 더 극단적 사고도 있다. 스웨덴 방송국 TV4는 편집을 마친 방송 자료가 통째로 사라져 프로그램 방영을 2027년으로 미뤘고, 방송사는 "독립적인 AI 에이전트가 지웠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해커뉴스 댓글들(익명)의 요지는 원인 규명보다 날카롭다. 에이전트가 되돌릴 수 없는 행동을 할 수 있는 권한에 둔 설계 자체가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콘토가 승인 버튼을 사람에게 남긴 것도 같은 계산으로 읽힌다.
한국 기업이 같은 일을 하려면 걸리는 지점
계약 검토의 반복 구조는 한국 로펌과 기업 법무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출발선이 다른 곳이 많다. 계약서가 스캔본과 서명, 도장 중심으로 돌아가면 AI가 읽을 수 있는 디지털 텍스트를 만드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법률 자료를 해외 클라우드에 보내는 보안 심사도 흔한 걸림돌이다. 금융 행정 자동화는 문턱이 더 높다. 금융 데이터를 국외로 보내는 제한이 있어 콘토식 구조를 그대로 옮기기 어렵다. 다만 사람이 최종 승인하는 구조는 규제 쪽 요구와 오히려 맞아떨어진다. 스펠북 고객 목록에 LG가 있다는 점은 한국 기업이 이미 쓰기 시작했다는 신호 정도로 읽을 수 있다.
남는 것
10배와 5배는 모두 파는 쪽의 자체 발표다. 그대로 믿을 숫자가 아니다. 그래도 두 사례에서 구도 자체는 흔들리지 않는다. AI가 초안과 준비를 가져가고 사람이 승인한다. 시간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검수 창구로 모인다. 그 창구를 얼마나 얇게 만들 수 있는지가 도입 성패를 가른다. 마윈은 자신은 기술 전문가가 아니라 고객의 눈으로 기술을 본다고 했는데, AX의 숫자도 보고서가 아니라 매일 계약서를 여는 사람의 시계로 확인할 일이다.
분석 근거: Anthropic 고객사례(스펠북·콘토), Hacker News 토론, r/AI_Agents. 이번 호는 openai.com 접속 차단과 검색 제한으로 OpenAI 고객사례 검증에 실패해 본문에서 제외했다. 공개 자료에 근거한 분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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