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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V만 틀어막은 규제, DUV 343대로 뚫렸다

류근웅류근웅 기자· 2026. 10. 12. PM 3:13:33· 수정 2026. 10. 12. PM 3:13:41

미국과 네덜란드가 최첨단 노광장비 EUV의 대중국 수출을 잠근 사이, 정작 그 아래층 문은 열려 있었다. 중국 본토 반도체 공장들은 올해 초까지 액침(침지형) DUV 장비 343대를 확보했고, 그중 절반 이상을 단 두 해에 걸쳐 몰아서 샀다. 규제 문서상으로는 막힌 길이, 시장에서는 활짝 열려 있었다는 뜻이다.

343대는 우연이 아니라 계산이다

미 워싱턴 싱크탱크 CTS가 지난달 말 낸 보고서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4일 보도했다. 공동 저자는 니컬러스 브라운 전 미 상무부 수출통제관과 사이프 칸 전 백악관 기술정책 고문이다. 숫자가 말을 대신한다.

구분수치
액침 DUV 누적 보유(2026년 초)343대
이중 ASML 트윈스캔 NXT:1980i약 270대
2024년 / 2025년 추가 구매90대 / 89대
2년간 구매 지출130억 달러(약 17조9400억 원) 이상

130억 달러면 EUV 한 대 값의 몇 배다. 중국은 비싼 최신 장비 대신, 규제 그물이 덮지 않는 기성 모델을 양으로 때운 셈이다.

건별 심사라는 구멍

허점의 출처는 명확하다. 네덜란드는 2023년 9월 NXT:2000i 이상 고성능 모델의 대중 선적을 금지했고, 2024년 9월엔 허가 대상을 NXT:1980i까지 내렸다. 그러나 건별 심사로 풀어주는 길이 남았고, 허가는 중국 각지로 쏟아졌다. ASML 매출에서 중국 비중은 2024년 41%, 2025년 33%였다. 규제가 강해진 기간과 중국 비중이 높았던 기간이 겹친다.

다중 패터닝으로 그린 7나노

CTS는 이 장비들로 다중 패터닝 공정 — 회로를 여러 번 겹쳐 그리는 방식 — 을 돌리면 7나노급 로직칩과 첨단 메모리를 만들 수 있다고 본다. 화웨이는 이미 이 조합으로 어센드(Ascend) AI 가속기를 양산했다는 게 보고서의 진단이다. 연 90대씩 도입이 이어지면 2035년까지 엔비디아 H100급 AI칩을 연간 4억3400만 개 생산할 수 있고, 2027년에 신규 수입이 전면 끊겨도 이미 비축한 설비만으로 연 1억5300만 개를 찍어낼 수 있다는 계산이다.

반대 논리도 있다

미 의회는 4월 매치법(MATCH Act)을 발의했다. 네덜란드·일본 등 동맹국에 150일 이내 대중 장비 수출규제 동참을 의무화하고, EUV뿐 아니라 DUV와 극저온 식각 장비까지 통제 대상에 넣는 초당적 법안이다. CTS 저자들은 2027년을 기점으로 신규 수입을 완전 차단하라고 촉구한다. 반면 유럽에선 자국 기업의 최대 시장을 일방적으로 잘라달라는 요구에 대한 반발이 만만치 않다. 실제로 네덜란드가 초기 통제권을 두고 내부 갈등을 벌인 끝에 개별 승인제로 선회한 경로가 지금의 허점을 만들었다. 규제는 서명보다 동맹의 합의가 어렵다는 걸 보여준 사례다.

한국은 수혜자이자 노출된 쪽

한국의 삶은 이 흐름 위에 있다. 관세청 집계로 10월 1~10일 수출은 261억400만 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102.0% 늘었고, 반도체가 121억9800만 달러(170.9% 증가)로 전체의 46.7%를 차지했다. 조업일수 효과를 걷어낸 일평균 기준으로도 28.5% 증가다. CTS는 2027년 전면 차단이 현실화하면 창신메모리·양쯔메모리의 추격에 눌리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수혜를 볼 수 있다고 짚는다. 반면 같은 통계에서 대중 수출은 167.3% 급증했다. 중국 시장에 대한 노출은 오히려 깊어진다. 이 틈에서 한국·일본 소부장 연대는 현실화하고 있다. 일본 JSR은 지난달 충북 청주에 EUV용 금속산화물레지스트 공장을 준공했고, 도쿄오카공업도 평택에 소재 공장을 마련했다. 반대편에서는 러시아 국영 컨소시엄이 2030년까지 1조 루블을 들여 중국 파운드리의 구형 생산라인 인수를 추진 중이다.

규제의 문구가 아니라 장비 보유 대수가 공급망의 지도를 다시 그리는 시대다. 한국이 베팅할 것은 남의 규제의 향배가 아니라, 그 규제가 무너지든 조여지든 생존하는 생산능력과 소부장 입지다.


분석 근거: 서울경제(2026.10.5), 디지털데일리(2026.10.4), 동아일보·관세청 수출입 통계(2026.10.12), 문화일보(2026.10.12), SCMP 보도 인용 CTS 보고서. 공개 데이터·보도에 근거한 분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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