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규제와 희토류 무기화, 한국은 샌드위치
워싱턴은 첨단 반도체로 베이징을 조인다. 베이징은 희토류로 워싱턴과 그 동맹을 조인다. 두 초강대국의 힘겨루기 사이에서 반도체와 배터리로 먹고사는 한국은 어느 쪽 손도 놓을 수 없는 자리에 서 있다.
미국의 칩, 중국의 광물 — 대칭 보복의 구도
미국은 올해 초 엔비디아 H200, AMD MI325X 등 첨단 AI 칩의 대중 수출을 총연산능력 기준으로 재차 조이며 사실상 건별 심사 체제로 전환했다. 중국은 이에 맞서 희토류 수출통제 대상을 기존 7종에서 12종으로 늘렸고, 중국산 희토류를 상품가치의 0.1% 이상 포함하거나 중국의 제련·분리 기술을 사용한 제품까지 통제 대상에 넣었다. SCMP는 두 조치가 서로를 겨눈 대칭적 보복이라고 짚었다. 미국이 기술 우위를, 중국이 자원 우위를 무기로 쓰는 구도가 굳어진 셈이다.
숫자로 보는 중국의 지렛대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생산의 약 70%, 정제·가공의 80% 이상을 쥐고 있다. 국내 세관 통계 기준 6월 희토류 수출량은 전월 대비 34% 급감했고, 일본 향 갈륨·디스프로슘·터븀·이트륨 등 4대 전략소재 수출은 사실상 '0'으로 집계됐다. 겨냥한 대상이 일본이라 해도, 같은 통제 체계 아래 있는 한국 기업이 다음 표적에서 자유롭다는 보장은 없다.
| 항목 | 수치 |
|---|---|
| 중국의 세계 희토류 생산 점유율 | 약 70% |
| 중국의 희토류 정제·가공 점유율 | 80%대 |
| 한국의 핵심광물 해외 수입 의존도 | 95% 이상 |
| 네오디뮴 영구자석 대중국 수입 비중 | 88.0% |
| 한국 희토류 화합물·금속 대중국 의존(금액) | 화합물 61%, 금속 80% |
한국이 처한 자리 — 기술은 있는데 원료가 없다
관세무역개발원은 한국을 '샌드위치 리스크'로 규정했다. 반도체·배터리·디스플레이·전기차에서 기술 경쟁력은 상위권이지만, 그 생산을 떠받치는 핵심광물은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그 수입의 절대다수가 중국산이기 때문이다. 이차전지, 반도체, 첨단모빌리티, 수소 산업이 공통으로 이 리스크에 걸려 있다. 미국의 규제 명단에 오르지 않아도, 중국의 원료 공급이 흔들리면 생산라인이 그대로 멈출 수 있는 구조다.
정부 대응은 시작됐지만 속도가 관건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자원안보실은 출범 후 첫 정책으로 희토류 공급망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희토류 17종 전체를 핵심광물로 지정하고, 해외자원개발 융자 예산을 전년 대비 285억원 늘린 675억원으로 확대했으며, 융자 지원 비율도 50%에서 70%로 올렸다. 대체·저감·재자원화 R&D 로드맵과 국내 생산시설 투자 보조도 포함됐다. 방향은 맞지만 광산 개발과 제련 기술 확보는 짧아도 수년 단위 사업이라, 이번 겨울처럼 통제가 갑자기 조여올 때 당장 쓸 수 있는 카드는 아니다.
시장에 새겨진 신호
중국의 통제 강화 국면에서 관련 희토류·대체소재 개념주가 최대 350% 급등했다는 보도는 시장이 이미 공급 충격을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는 뜻이다. 반대로 국내 반도체·배터리 대기업의 주가는 원료 조달 불확실성만큼 할인 압력을 받을 수 있다. 자유무역과 개방된 공급망이 정상 작동할 때 한국 기업의 기술력이 가장 큰 무기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지금의 자원 무기화는 시장 논리가 아니라 국가 간 힘의 논리가 공급망을 좌우하는 예외적 국면이다. 정부 융자와 R&D만으로는 부족하고, 호주·베트남·캐나다 등 대안 공급처와의 민간 계약 다변화가 병행돼야 리스크의 절반이라도 줄어든다.
분석 근거: South China Morning Post, 관세무역개발원(KCTDI), 뉴스핌(NVP), BigGo Finance. 공개 데이터·보도에 근거한 분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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