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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의 날갯짓 한 번이 크리에이터를 바꾼다

모민철모민철 기자· 2026. 9. 12. PM 2:50:28· 수정 2026. 9. 12. PM 2:58:14

2026년 어도비(Adobe)가 한국을 포함한 8개국 디지털 크리에이터 1만60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생성형 AI(스스로 글·그림·영상 등을 만들어내는 인공지능)를 사용해 본 크리에이터의 75%가 AI를 작업의 필수 요소로 꼽았다.

생산력의 확장 폭도 크다. AI를 적극 활용하면 한 번의 촬영이 유튜브 영상 한 편으로 끝나지 않고 쇼츠와 릴스, 뉴스레터로 재생산되며 언어까지 자동 번역돼 구독자층이 넓어진다. 그 결과 1인 미디어가 작은 미디어 회사에 버금가는 생산력을 갖췄고 개인은 플랫폼 밖에서 지속가능한 브랜드로 성장할 여유를 얻었다. 이런 가운데 AI는 카메라 앞에도 섰다. 분홍색 명품 슈트를 차려입고 인생 조언을 건네는 글로벌 인플루언서 그래니 스필스는 2026년 8월 기준 틱톡 팔로워 92만 명, 인스타그램 팔로워 211만 명을 거느리고도 실존하지 않으며, 크리에이터 에릭 수에레즈와 애덤 바세르슈타인이 만든 AI 인플루언서다. 두 사람은 클로드로 아이디어와 대본을 만든 뒤 베오와 소라 같은 영상 생성 도구로 제작한다고 밝혔고, 국내의 '정서불안 김햄찌'와 '낭만 백수달' 역시 AI로 만들어진 가상 캐릭터다.

다만 높은 생산성이 곧 영향력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래니 스필스의 일부 영상은 틱톡에서 독창적이지 않은 콘텐츠로 판정돼 수익화 대상에서 제외됐다. 스포티파이도 실존하지 않는 가수에게 'AI페르소나' 표시를 붙이고 음악 추천 대상에서 빼겠다고 발표하는 등 신뢰를 기반으로 성립하는 인플루언서 생태계에서 AI가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다. AI는 립스틱 바른 입술 이미지를 완벽하게 그리지만 오후 3시부터 입술이 건조해진 하루의 경험은 공유하지 못한다. 도쿄 맛집 수십 곳을 정리할 수 있어도 세 번째 방문 때마다 주문하는 메뉴 같은 사적 팁은 갖지 못한다. 팔로워들이 특정 크리에이터를 찾는 것은 무엇을 좋아하고 포기하는지, 시간이 지나도 어떤 기준을 유지하는지 지켜보기 위해서다.

AI를 실제로 쓰는 크리에이터의 계산법도 바뀌고 있다. 구독자 409만 명을 보유한 유튜브 채널 'Vlogbrothers'를 운영하는 행크 그린은 최근 자신의 커리어를 돌아보며 '개인 AI 정책'을 공표했다. 자료 조사와 편집 과정에서 대규모 언어모델(방대한 글을 학습해 사람처럼 문장을 쓰는 AI)에 지나치게 의존해왔다고 인정한 그는 콘텐츠는 반드시 사람이 만들고, 대본 작성과 편집에는 대규모 언어모델을 쓰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웠고, 더 많이 만든다고 더 좋은 것은 아니며 크리에이터의 의견이 진짜 자신의 생각이라 믿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질문 자체가 달라진 셈이다. 불과 몇 년 전 콘텐츠 영역의 화두는 'AI로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였지만 제작 과정에 AI 사용이 당연해지자 물음은 '어디까지 활용할 것인가'로 옮겨갔다. 유튜버 뽀용뇽은 얼루어와의 인터뷰에서 화보를 찍을 여력이 없을 때 AI가 생성한 이미지를 피드에 올렸는데 반응이 좋았다며 무엇을 만들지 명확한 상태에서 원하는 의도를 구현하는 데 AI는 유용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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