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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M4는 세계 1위인데, 전기가 없다

류근웅류근웅 기자· 2026. 8. 29. AM 9:02:13· 수정 2026. 8. 29. AM 9:02:22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차세대 GPU '루빈'에 8단 HBM4를 공급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두 회사다. 한국 반도체는 AI 붐의 심장부를 차지했다. 그런데 정작 그 칩을 꽂아 돌릴 데이터센터의 전기는 한국 안에서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세계 최고의 메모리를 만드는 나라가, 그 메모리를 돌릴 전력망은 세계에서 가장 경직된 독점 구조에 맡겨두고 있는 셈이다.

전 세계가 지금 전기를 놓고 싸운다

Gartner는 2026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132GW로 전년(104GW) 대비 27%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소비 전력량 기준으로도 447TWh에서 565TWh로 26.4% 증가하는 규모다. AI 전용 서버가 이 중 31%를 차지하고, 2027년에는 일반 서버 전력 소비를 넘어설 전망이라고 Gartner는 밝혔다. 애널리스트 링란 왕은 "AI 연산 능력이 이제 전력 확보 여부에 의해 제약받는다"고 짚었다. 반도체 경쟁이 이미 전력 경쟁으로 옮겨갔다는 뜻이다.

한국의 셈법: 6배, 그리고 원전 7기

국내 데이터센터의 발전 소비량은 2024년 5TWh에 그쳤지만, 2040년에는 31.6TWh로 여섯 배 넘게 뛸 것으로 전망된다. 2060년 무렵에는 65.4TWh까지 늘어나는데, 이는 1.4GW급 원전 7기가 꼬박 돌아가야 감당되는 규모다. 문제는 속도다. 원전이든 LNG 발전이든 신규 설비를 짓는 데는 수 년이 걸리는데, AI 데이터센터 투자는 이미 진행 중이다.

병목은 발전소가 아니라 한전이다

한국전력은 발전 자회사 5곳을 통해 설비의 약 60%를 쥐고 있고, 송배전망과 전력거래소(KPX)를 통한 거래까지 사실상 독점한다. 산업용 전기요금은 2022년 1분기 128.5원/kWh에서 2024년 4분기 168.9원/kWh로, Tier B 기준 63% 올랐다. 업계에서는 이미 요금이 180원 선까지 올라왔다고 말한다. 대규모 전력을 쓰는 AI 데이터센터가 버티려면 100원대 초반 요금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요금이 시장 원리가 아니라 정치적 결정으로 오르내리는 구조에서, 사업자는 전력 비용을 예측할 수가 없다.

구분수치
한국 데이터센터 전력소비 2024년 → 2040년5TWh → 31.6TWh (6배)
산업용 전기요금 2022년 1분기 → 2024년 4분기128.5원 → 168.9원/kWh (+63%)
한전 LNG 매입 전기 단가(2024)158.4원/kWh (일반요금 대비 6.2% 저렴)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수요 2025 → 2026104GW → 132GW (+27%)

시장이 스스로 길을 뚫기 시작했다

여당은 발전사업자가 KPX를 거치지 않고 인근 데이터센터와 직접 전력구매계약(PPA)을 맺을 수 있도록 하는 '데이터센터 전기 직거래법'을 발의했다. LNG 직접 PPA를 요구하는 업계 목소리도 같은 맥락이다. 한전이 사들이는 LNG 전기 단가가 일반 요금보다 6.2% 싸다는 사실은, 중간 마진과 규제를 걷어내면 더 싼 값에 전기를 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민간 발전사와 데이터센터가 직접 계약하는 시장이 열리면, 요금은 정치가 아니라 수요와 공급이 정한다.

규제완화가 공짜는 아니다

반론도 있다. 직접 PPA가 확산되면 대기업 데이터센터가 값싼 전력을 선점하고, 일반 가정과 중소기업은 상대적으로 비싼 한전 전기에 남겨질 수 있다는 우려다. 송배전망 자체는 여전히 한전 독점이라 망 이용료를 둘러싼 분쟁도 남는다. 시장 개방이 만병통치약은 아니고, 계통 안정성을 지킬 최소한의 규칙은 필요하다.

HBM4 1등이라는 타이틀은 전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국내 데이터센터 투자로 이어지지 않고 해외 증설로 흘러갈 수 있다. 반도체 설계도는 서울에서 그리고, 데이터센터는 미국이나 동남아에 짓는 그림이 이미 현실적인 대안으로 거론된다. 전력 시장을 얼마나 빨리 여느냐가, 다음 5년 한국 AI 산업의 위치를 정할 변수다.


분석 근거: ZDNet Korea, 머니투데이, Seoul Economic Daily, Gartner, 전기신문,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공개 데이터·보도에 근거한 분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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