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북핵 단계적 접근 공식 제시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북핵 문제에 '중단·축소·폐기'라는 단계적 접근을 공식 제시했다.
달리는 차를 일단 세워야 한다는 비유로 북한 비핵화 협상의 현실적 출발점을 제시한 것이다. 유엔총회 일정으로 미국과 멕시코를 순방 중인 이 대통령은 "높아진 한국의 위상을 실감한다"며 이번 발언이 갖는 외교적 무게를 간접적으로 내비쳤다. 핵 완전 폐기를 전제로 한 기존 원칙론에서 벗어나, 검증 가능한 부분적 조치부터 잠재적 합의를 모색하겠다는 전환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완전한 폐기'에서 '단계적 접근'으로
북핵 중단·축소·폐기 순서를 강조한 발언은 한반도 비핵화 담론에서 무게가 실리는 대목이다. 과거 보수와 진보 정권을 막론하고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 즉 CVID 원칙이 남북 및 북미 협상의 기본 전제로 유지돼 왔다. 그러나 북한이 핵 보유국 지위를 헌법에 명시한 상황에서 전면 폐기 일변도의 접근은 협상 테이블 자체를 만들지 못한다는 비판이 그간 국내외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이 지점을 정면으로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의 중단, 핵 능력의 축소, 그리고 궁극적 폐기로 이어지는 단계별 경로는 상호주의 원칙에 따른 제재 완화 카드와 연동될 수밖에 없다. 지주는 부분적 이행에 대한 보상을 인정하느냐다. 미국의 대북 정책 기조와의 정합성 여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호르무즈 파병 부정과 맞닿은 실용외교
같은 맥락에서 눈에 띄는 대목이 이 대통령의 호르무즈 해협 관련 발언이다. 그는 "전쟁 관여·개입 파병은 없다"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중동발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여야정 민생경제협의체 회담까지 열며 중동 리스크 대응을 논의해 온 터라, 파병 부정 선언은 국내 여론과의 거리를 좁히는 동시에 외교적 소모를 최소화하려는 계산으로 읽힌다.
대미 투자 협상 역시 실용주의 노선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 대통령은 18일 기자회견에서 "동의하기 쉽지 않은 부분들이 좀 있어 다시 얘기를 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산업부가 국회에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대미 투자 1호 사업은 텍사스 가스발전이며, 2·3호 사업으로 원전과 알래스카 프로젝트가 검토되고 있다. '우린 상업적 합리성이 있는 사업만 합니다'라는 그의 원칙 선언과 맞물려, 통상 마찰을 굴욕적 양보가 아닌 수익성 판단에 따른 선택으로 재정의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외교 성과와 내부 부담의 간극
문제는 이 같은 외교적 스텝이 국내 정치 일정과 어떻게 맞물리느냐다. 리얼미터 조사에서 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10주 만에 반등해 34.8%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는 여전히 취임 초반 대비 낮은 수준이며, 40%대 회복 없이는 개헌 논의든 장기 국정 운영이든 동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이 대통령이 직접 연임 개헌 가능성에 선을 그으면서 5년 단임의 안정적 국정 운영에 무게를 싣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당내 사정도 만만치 않다. 김민석 전 국방부장관은 "정권은 짧다"는 발언으로 후폭풍에 휘말렸고, 친명계를 중심으로 정청래 민주당 대표에 대한 불출마 압박이 이어지고 있다. 검찰개혁 추진 과정에서 유시민이 '어물전 썩은내'가 난다고 강하게 비판했고, 야당은 검찰청 폐지 논의를 '범죄 지우기 위한 보복 조치'로 규정하며 반발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단 한 톨의 억울한 피해도, 작은 빈틈조차 생기지 않도록 철저히 점검과 보완하겠다"고 방침을 밝힌 것은 이런 내외부 압력에 대한 대응이다. 아울러 낙마한 장관급 후보자가 5명에 이르고 인사 비선개입 의혹까지 제기된 점은 인사 검증 시스템 전반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낳고 있다.
3단계 로드맵의 실타래
북핵 중단·축소·폐기 로드맵이 실질적 협상 문서로 이어지려면 세 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우선 북한의 핵·미사일 활동 동결에 상응하는 제재 완화 수순에 대한 미국의 동의다. 다음으로 동결 이행 여부를 검증할 국제적 감시 체계다. 마지막으로 단계별 이행이 중단되거나 되돌아갈 때 적용되는 스냅백, 즉 원상 복귀 장치다. 이 세 가지가 설계되지 않으면 단계적 접근은 핵 능력만 시간 벌어주는 수단으로 소진될 우려가 있다.
12·3 계엄 당시 계엄군 체포 대상에 포함됐던 이 대통령에게 북핵 문제는 정치적 입지와 무관하게 대한민국 안보의 최대 현안이다. 성공과 실패가 영구적이지 않다는 오랜 통찰처럼, 한반도 비핵화 협상 역시 완전한 성공도 완전한 실패도 아니며 검증 가능한 작은 이행의 누적 위에서만 방향을 잡는다. 유엔총무장 무대에서 제시된 3단계 방안이 북미 간 실제 협상 테이블로 옮겨질지, 향후 몇 달 간 남북관계와 한미 협조 체계의 시금석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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