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1조 예산의 그림자, 104조는 국회가 못 보는 돈이다
내년 나라살림이 사상 처음 820조 원을 넘었다. 그런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벌어지는 진짜 싸움은 예산안이 아니라, 예산 지출 총액에 잡히지 않는 162조 원짜리 통장을 두고 벌어진다.
반도체가 번 돈, 예산 밖 통장에
정부는 9월 1일 2027년 예산안과 함께 '미래대응기금'을 국회에 넘겼다. 반도체 호황으로 올해 초과세수가 50조 원을 넘을 전망하자 이 돈을 뿌리로 삼아 162조 3천억 원 규모의 기금을 만든 것이다. 내년에 꺼내 쓰는 돈은 45조 4천억이다. AI와 청년 지원에 18조 9천억, 지방·교육·인재에 17조 9천억을 배정했다. 나머지 104조 4천억은 용처를 정하지 않은 채 통장에 쌓아둔다.
| 항목 | 2026년 | 2027년 | 변화 |
|---|---|---|---|
| 총지출 | 727.9조 원 | 820.9조 원 | +93.0조 원 (+12.8%) |
| 국가채무 | 1,413.8조 원 | 1,519.8조 원 | +106.0조 원 |
| GDP 대비 채무비율 | — | 51.6% | 사상 처음 1,500조 돌파 |
자료: 기획재정부 2027년 예산안, 자유경제원 분석(2026.11.2)
국회가 못 보는 돈
문제는 이 기금이 예산 밖에서 굴러간다는 점이다. 현행 국가재정법상 정부는 기금 사업비의 20% 범위에서 국회 승인 없이 지출 계획을 바꿀 수 있는데, 정부는 이 문턱을 30%로 올리는 개정안을 함께 냈다. 기금이 커질수록 심의 없이 움직이는 돈도 커진다는 뜻이다. 초과세수를 세계잉여금으로 확정하기 전에 기금에 먼저 넣는 구조라 지방 재정교부금 상환을 우회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산은 국회가 줄이고 기금은 정부가 푸는 구조가 되면, 헌법이 위임한 국회의 예산 심사권은 총액의 6분의 1쯤으로 좁아든다.
여야가 내놓은 숫자, 각각의 계산
국민의힘 류덕현 의원은 여유자금 104조 원을 전액 국채 상환에 돌리면 이자비용 약 3조 원을 아낄 수 있다고 계산했다. 임이자 정책위의장은 "100대 문제 사업을 중심으로 30조 원을 감액하겠다"고 나섰고, 정점식 원내대표는 "2030년이면 국가채무가 1,734조 원에 이른다"고 맞받았다. 민주당의 논리도 분명하다. 세수가 반도체 하나에 매달려 있어 호황이 꺾이면 결손이 온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여유자금이 세수 부족 시 재정 여력 보강에 쓰이며 불황기 지출 축소와 국채 신규 발행을 억제한다고 설명했다. 빚 발행을 줄이는 통로로 쓰겠다는 취지인데, 국채 발행 축소라는 결과만 보면 야당 주장과 방향이 같다. 다른 지점은 하나, 그 돈을 누가 언제 결정하느냐다.
호황은 계속되지 않는다
쟁점을 가르는 건 정치가 아니라 이자다. 내년 국고채 이자 상환액은 40조 4천억 원으로 집계됐고 2030년엔 51조 원을 넘는다. 초과세수 50조는 반도체 한 세대가 만든 숫자고, 세대는 반드시 바뀐다. 용처 없는 104조를 '미래'라는 이름의 통장에 두는 나라와 이자부터 걷어내는 나라는 4년 뒤 서로 다른 채무를 안고 있을 것이다. 통장에 자물쇠를 채우기보다, 열쇠를 국회에 돌려주는 것이 순서다.
분석 근거: 대한민국 정책브리핑(korea.kr), 매일경제, 한겨레, 조선일보, 연합인포맥스, 자유경제원, 뉴스핌, 한국일보 보도. 공개 데이터·보고에 근거한 분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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