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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가 없어서 AI를 못 짓는다

류근웅류근웅 기자· 2026. 8. 28. AM 9:03:00· 수정 2026. 8. 28. AM 9:04:31

수도권 데이터센터 부지엔 크레인이 서 있는데, 전선 끝엔 아무것도 연결돼 있지 않다. AI 붐은 시장이 만들었지만, 그 시장이 필요로 하는 전기는 정부의 승인 도장 없이는 한 줄도 흐르지 않는다. 신청은 쏟아지는데 공급은 막혀 있는 이 어긋남이 지금 한국 AI 인프라의 실제 모습이다.

숫자가 말하는 병목

한국IDC 집계로 국내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2025년 4,461MW에서 2028년 6,175MW로 연평균 11%씩 늘어난다. 전자신문 보도는 더 앞선 시점을 짚는데, 계약전력 기준 2020년 398MW였던 수요가 2029년엔 1,569MW로 9년 만에 4배 뛴다는 전망이다. 문제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머니투데이 집계(2024년 8월~2026년 3월 기술검토 기준)를 보면 전국 신청 736건 중 522건, 71%가 수도권에 몰렸는데 그중 279건, 53.4%가 '공급불가' 판정을 받았다. 서울에서 승인된 신청은 단 1건이다.

구분신청 건수결과
수도권522건279건 공급불가(53.4%)
비수도권214건187건 공급가능(본심사 통과율 89.7%)

전기가 없는 게 아니라 절차가 없다

한국데이터경제신문의 심층 분석에 따르면 2030년까지 예정된 신규 데이터센터 150건이 요구하는 전력은 합산 9.36GW인데, 현재 가동 중인 전체 데이터센터 수전용량은 1,986MW에 그친다. 발전 설비가 절대적으로 모자란다기보다, 사업자의 전력 영향을 판정하는 '전력계통영향평가' 제도가 법정 고시 없이 2년째 시범운영 중이라는 사실이 더 근본적이다. 심사 기준 자체가 확정되지 않았고, 평가를 대행할 자격 요건은 지나치게 높다는 게 업계의 반발이다. 규제가 시장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게 아니라, 규제가 아직 완성되지도 않은 채로 시장을 막고 있는 셈이다.

SMR 특별법은 통과됐지만

정부는 2026년 2월 SMR 특별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키고 창원·부산·경주에 제작지원센터를, 1,000억원 규모 원전산업성장펀드를 마련했다. 파이낸셜뉴스는 이를 두고 "기술은 있는데 속도가 문제"라고 짚었다. 대형 원전보다 건설 기간이 짧다는 SMR의 장점도 인허가·부지 확보 단계를 거치면 수년 단위 시간표로 바뀐다. 법은 만들었지만 그 법이 실제 전력을 계통에 태우기까지는 여전히 별도의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다.

지방 분산이라는 해법의 함정

정부는 비수도권 이전을 대안으로 민다. 삼성SDS가 구미에 60MW급 센터에 4,273억원을 투자하고, 전남 해남엔 국가AI컴퓨팅센터가 들어서는 게 성공 사례로 꼽힌다. 그런데 두 사례 모두 대형 수요를 미리 확보한 '앵커 임차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AI 추론 서비스는 지연시간에 민감해 수요 자체가 수도권 인력·기업과 붙어 있어야 하고, 전기를 구했다고 해서 자금과 운영 인력까지 따라오는 건 아니다. 전력만 지방으로 보내면 문제가 풀린다는 셈법은 절반의 답이다.

반론과 그 한계

전력망 안전성과 계통 부담을 이유로 심사를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에도 근거는 있다. 국지적 전력 부족이 블랙아웃으로 번질 위험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현장에서 나온 것도 사실이고,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의 애초 취지 역시 수도권 과부하를 막자는 데 있었다. 다만 그 취지를 지키기 위한 세부 고시조차 2년 넘게 미완성이라면, 이는 신중함이 아니라 행정 지연이다. 시장의 투자 결정은 고시가 나오기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승인율 2%대의 수도권과 인프라는 있지만 수요가 없는 지방, 이 사이에서 자본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전력계통영향평가의 법정 고시를 언제 마무리하느냐가 다음 1~2년 동안 어느 기업이 한국에 서버를 두고 어느 기업이 해외로 나가는지를 가르는 실질적 변수가 된다.


분석 근거: 전자신문, 한국데이터경제신문, 파이낸셜뉴스, 머니투데이, 한국IDC 자료. 공개 데이터·보도에 근거한 분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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