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조 국부펀드, 7조를 10년 묵힌 손으로 출발한다
정부는 2027년부터 20조원 규모 '전략형 국부펀드'를 돌리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그 돈을 맡을 한국투자공사(KIC)는 국회와 언론에 '7조원을 10년간 묵힌 기관'으로 지목돼 있다. 국부를 불리겠다는 계획보다, 국부를 방치해 온 실적이 먼저 읽혀야 한다.
반년 만에 뒤집힌 설계도
지난해 말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싱가포르 테마섹을 본뜬 별도 기관 신설이 발표됐다. 반년 만인 올해 7월 정부는 방향을 틀었다. 새 기관 대신 KIC에 '전략투자계정'을 만들어 종합형 국부펀드로 개편한다는 구상이다. 7월 31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확정된 이 방안은 8월 한국투자공사법 개정안 발의와 연내 통과를 거쳐 내년 가동을 목표로 한다.
| 시점 | 경과 |
|---|---|
| 2025년 말 | 대통령 업무보고, 국부펀드 신설 발표 |
| 2026년 7월 | 신설 철회, KIC 전략투자계정으로 선회 |
| 2026년 8월 | 공사법 개정안 발의, 연내 통과 목표 |
| 2027년 | 전략형 국부펀드 가동 계획 |
재원의 정체는 은행 배당이다
자본금 20조원의 뼈대는 산업은행·수출입은행·기업은행 등 공공기관 주식 약 16조원과 상속·증여세 물납주식 약 4조원의 현물 출자다. 실제 투자에 쓸 현금은 배당금과 물납주식 매각대금 등 약 6000억원에 그친다. 나머지는 장부 위의 주식이고, 그 주식이 내던 배당은 재정의 확정적 수입이었다. 정부 스스로 안정적 배당을 고위험 전략산업 지분투자로 바꾸는 것이다.
7조를 10년 묵힌 전례
KIC는 국내 기업 해외진출 지원용으로 정부로부터 50억달러(약 7조원)를 위탁받고도 10년 넘게 집행률이 1%를 밑돌았다. 지난달 공개된 집행률은 0.3%다. 2024년 10월 국정감사에서 같은 지적이 나왔고 KIC 수뇌부도 지연을 인정했다. 수익금 운용도 비슷하다. 더불어민주당 허영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2022년 10월과 2025년 5월 두 차례 KIC 운용수익 90억달러(13조1148억원)를 회수했고, 첫 회수분 60억달러는 KIC가 -14.36% 수익률을 기록한 해에 이뤄졌다. 국부펀드의 성장동력인 복리를 정부가 직접 끊은 셈이다.
| 쟁점 | 수치 |
|---|---|
| 해외진출 위탁금 | 50억달러(약 7조원), 10년 집행률 0.3% |
| 운용수익 회수 | 두 차례 90억달러(13조1148억원) |
| 첫 회수 시점 | 수익률 -14.36% 기록 해에 60억달러 |
| 초기 현금 재원 | 배당금 등 약 6000억원 |
정부의 돈이 겹치는 판
펀드가 설 자리도 비좁다. 국부펀드 신설 발표 하루 전 150조원 규모 '국민성장펀드'가 출범했고, 지원 대상은 국부펀드와 같은 AI·반도체 등 전략산업이다. 더불어민주당 정태호 의원은 국민성장펀드·미래대응기금과의 기능 중복을 지적했다. 시장이 이미 자금을 공급하는 분야에 정부 돈이 겹겹이 들어가면 자산 가격을 미는 쪽이 먼저 커지고, 실패의 비용은 과세 기반으로 돌아온다.
규율이 먼저다, 20조는 나중이다
정부 논리가 없지 않다. 21년 쌓은 KIC의 운용 역량과 해외 네트워크를 새 기관 대신 쓰는 편이 낫다는 판단이었고, 외환위탁계정과의 방화벽, 이사회의 독립 심의도 설계했다. 테마섹과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성과는 결국 정치가 수익을 걷어 가지 못하게 만든 규율에서 나왔다. 올해 2월 여당이 운용수익 회수 절차를 강화하는 공사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도 같은 방향이다. 20조원을 넘기는 속도보다, 정부가 그 돈에 손대지 못하게 만드는 강도가 국부를 지킨다.
분석 근거: ET뉴스, 머니투데이, 연합뉴스, 한국경제, 조선비즈 보도 및 정부 발표 자료. 공개 데이터·보도에 근거한 분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