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9억 달러 수출 뒤의 반도체 착시
한국 수출은 지금 두 개의 얼굴을 하고 있다. 7월 수출액은 988억9000만 달러로 역대 두 번째 규모를 찍었는데, 같은 시기 제조업 취업자는 24개월째 줄고 있다. 숫자만 보면 호황이고, 공장 문을 보면 불황이다.
988억 달러, 그러나 반도체가 다 벌었다
산업통상부 집계에 따르면 7월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62.8% 늘어난 988억9000만 달러, 반도체 수출은 178.8% 급증한 410억 달러로 두 달 연속 400억 달러를 넘겼다. 무역수지는 303억2000만 달러 흑자, 올해 누적 흑자는 1680억 달러에 달한다. 전체 수출 증가분의 상당 부분이 반도체 한 품목에서 나왔다는 뜻이다.
늘어난 건 물량이 아니라 가격이다
전자신문 보도를 보면 낸드플래시와 DDR4·DDR5 등 주력 메모리 단가가 전년 대비 400~800%가량 뛰었다. 물건을 더 많이 판 게 아니라 같은 물건을 훨씬 비싸게 판 것이다. 산업연구원이 반도체와 ICT 기기를 빼고 계산하자 지난해 수출액은 오히려 1.1% 역성장으로 돌아섰다. 반도체를 걷어내면 한국 제조업 수출은 이미 뒷걸음질 중이다.
공장은 사람을 늘리지 않는다
반도체 단가 상승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실적표는 채워주지만 고용 통계는 채우지 못한다. 서울경제 보도에 따르면 제조업 취업자는 24개월 연속 감소했고, 15~29세 청년 고용률은 43.9%로 26개월째 하락세다. 수출액이 사상 최대를 찍는 동안에도 현장에서 사람을 더 뽑을 유인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나마 반도체가 고유가를 막아준다
반도체 호황이 무의미한 건 아니다. 디지털타임스 분석을 보면 IT 부문 수출물가는 3월 기준 전년 대비 59.9% 뛰었고 수출물량도 23.0% 늘어, 이 몫이 무역수지 흑자를 전년보다 210억 달러가량 키우는 역할을 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82달러로 오르는 시나리오에서도 무역수지 축소폭은 약 200억 달러로 추산돼, 반도체가 없었다면 무역수지는 진작 적자로 돌아섰을 수 있다.
| 지표 | 수치 |
|---|---|
| 7월 전체 수출 | 988.9억 달러 (+62.8%) |
| 7월 반도체 수출 | 410억 달러 (+178.8%) |
| 반도체·ICT 제외 수출 증감 | -1.1% |
| 제조업 취업자 | 24개월 연속 감소 |
| 청년(15~29세) 고용률 | 43.9%, 26개월 연속 하락 |
낙수효과는 아직 오지 않았다
정부와 여당은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결국 설비투자와 협력업체 일감으로 번진다는 논리를 편다. 실제로 반도체 장비·소재 업체 일부는 수주가 늘었고, 파운드리 시장도 성장 국면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그 온기가 제조업 전체 고용 지표에 잡히기까지는 시차가 있고, 지금까지의 24개월 연속 감소는 그 시차를 정당화하기엔 길다.
반도체 수출이 무역수지를 지키는 방패라는 사실과, 그 방패가 일자리를 만드는 엔진은 아니라는 사실은 동시에 참이다. 다음 달 수출 지표에서 반도체를 뺀 나머지 품목이 플러스로 돌아서는지, 제조업 취업자 감소세가 25개월째로 이어지는지가 이 호황의 진짜 성적표다.
분석 근거: 머니투데이, 전자신문, 디지털타임스, 서울경제. 공개 데이터·보도에 근거한 분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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