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는 넘치는데 사람이 없다, K-조선의 역설
한국 조선업은 지금 사상 최고 영업이익과 사상 최악 인력난을 동시에 겪고 있다. 수주잔고는 쌓이고 주가는 오르는데, 정작 그 배를 용접할 사람은 협력업체 절반이 외국인으로 채워질 만큼 빠듯하다. 호황과 공동화가 한 몸에서 벌어지는 이 장면이 한국 제조업 전체의 미래를 미리 보여준다.
점유율은 뺏겨도 이익은 더 남는다
2026년 상반기 세계 선박 수주 시장에서 중국은 3,100만 CGT(1,131척)를 따내며 72%를 가져갔다. 한국은 797만 CGT(195척), 점유율 19%에 그쳤다. 언뜻 참패처럼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다르다. 한국의 척당 평균 수주 규모는 3만8,000 CGT로 중국(2만6,000 CGT)보다 크다. 국내 조선 3사의 상반기 누적 수주액은 300억 달러를 넘겼고, HD현대는 2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48.1% 급증한 9억3,500만 달러를 기록했다.
LNG선이라는 좁은 문
이 격차를 만든 건 물량이 아니라 선종이다. 한국은 LNG운반선 같은 고부가가치 선박에 선별 수주를 집중해왔고, 중국은 벌크선·컨테이너선 중심으로 저가 물량을 흡수했다. 시사저널e에 따르면 상반기 세계 수주의 75%가 중국으로 향했지만, 그 물량의 상당수는 이윤율이 낮은 범용 선종이다. 문제는 이 좁은 문이 언제까지 열려 있느냐다. 중국 조선사들도 LNG선·대형 컨테이너선 기술을 빠르게 따라잡고 있어, 한국이 의존하는 '기술 격차 프리미엄'은 고정된 자산이 아니라 소모되는 자산이다.
협력업체 절반이 외국인 노동자
수주가 몰리는 동안 현장은 반대 방향으로 비어가고 있다. 거제시 조선업 종사자는 2015년 약 8만 명에서 2024년 약 5만2,000명으로 35% 줄었다. 조선업이 포함된 기타 운송장비 제조업의 미충원율은 14.7%로 전 산업 평균(8.3%)의 두 배에 달한다. 그 공백을 메운 건 외국인 인력이다. 조선업 외국인 근로자 비중은 2021년 약 5%에서 2026년 현재 약 25%까지 뛰었고, 일부 협력업체 작업반은 외국인 노동자가 절반을 넘는다. 지난해 조선업 E-7-3 비자 발급 건수는 1만3,297건으로, 264건에 불과했던 2021년의 50배다.
| 지표 | 2021년 | 2026년 |
|---|---|---|
| 조선업 외국인 근로자 비중 | 약 5% | 약 25% |
| E-7-3 비자 발급 건수 | 264건 | 1만3,297건 |
| 거제시 조선업 종사자 | - | 약 5만2,000명(2024년 기준, 2015년比 35%↓) |
숙련공은 늙고 청년은 안 온다
인력난의 뿌리는 단순한 일손 부족이 아니라 세대 단절이다. 협력업체 기능인력 평균 연령은 44~45세, 40대 이상 비중은 60%를 넘는다. 용접·도장·취부 같은 핵심 직종에서 20~30대 신규 유입이 끊긴 지 오래라는 뜻이다. 정부가 인력난 대응을 위해 외국인력을 늘려온 것 자체는 합리적 대응이지만, 고용노동부와 법무부가 E-7 비자 규모를 단계적으로 조정하겠다고 밝히면서 현장에서는 다시 공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임금과 근로환경을 개선해 내국인 청년을 끌어들이는 구조적 처방 없이 비자 총량 조절만으로는 이 흐름을 되돌리기 어렵다.
호황의 유통기한
지금의 실적은 2020년대 초반 저가 수주 경쟁에서 발을 뺀 결과이자, LNG선이라는 좁지만 수익성 높은 시장을 지켜낸 결과다. 하지만 그 시장을 지킬 사람이 줄어드는 속도가 수주 잔고가 쌓이는 속도보다 빠르다면, 이익은 숫자로만 남고 생산능력은 소리 없이 깎여나간다. 자유로운 노동시장 개방과 임금 유인 확대, 두 가지를 동시에 풀지 않는 한 K-조선의 슈퍼사이클은 사람 부족이라는 병목 앞에서 스스로 속도를 늦추게 될 것이다.
분석 근거: 아주경제, 글로벌이코노믹, 시사저널e, 헤럴드경제, G밸리뉴스(g-enews.com). 공개 데이터·보도에 근거한 분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