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의 61%가 ICT…역대 최대 흑자의 주인은 메모리 가격이다
8월 한국 수출에서 정보통신(ICT) 제품이 차지한 비중이 사상 처음 60%를 넘어섰다. 역대 최대 수출액과 첫 400억 달러대 ICT 흑자를 함께 몰고 온 숫자지만, 뒤집어 보면 국가 무역의 절반 이상이 단일 품목군의 가격 사이클에 묶여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같은 날 발표된 8월 수출물가는 3년 8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두 통계를 나란히 놓으면 이번 호황의 정체가 선명해진다.
반도체를 빼면 383억 달러
산업통상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14일 내놓은 '8월 ICT 수출입 동향'에서 ICT 수출은 599억8천만 달러로 집계됐다. 1년 전 같은 달(228억4천만 달러)보다 162.6% 늘었고 월간 기록으로는 역대 최대다. 전체 수출 982억5천만 달러 가운데 61.0%다. 여기서 ICT를 빼면 나머지 품목 수출은 약 383억 달러다. ICT 수입이 186억1천만 달러(+48.8%)에 그친 탓에 ICT 무역흑자는 413억7천만 달러로 처음 400억 달러선을 넘었다.
폭증의 주성분은 '가격'이다
격차를 만든 건 반도체다. 반도체 수출 466억7천만 달러(+209.0%) 가운데 메모리가 409억4천만 달러(+290.2%)를 차지한다. 과기정통부는 AI 서버 수요가 만든 메모리 초과 수요 때문에 고정 거래 가격이 계속 올랐다고 밝혔다. 물량보다 단가가 수출을 끌어올린 셈이다.
| 품목 | 8월 수출 | 증감률 |
|---|---|---|
| 반도체(메모리 포함) | 466.7억 달러 | +209.0% |
| 컴퓨터·주변기기 | 64.0억 달러 | +383.1% |
| 디스플레이 | 16.9억 달러 | −7.0% |
| 휴대전화 | 16.4억 달러 | +23.2% |
| 시스템반도체 | 50.9억 달러 | +24.3% |
같은 '전자' 안에서도 온도차는 컸다. 시스템반도체는 24.3% 늘는 데 그쳤고 디스플레이는 OLED 단가 인하 여파로 오히려 7% 줄었다. AI 데이터 처리 확대로 기업용 SSD 수요가 몰린 컴퓨터·주변기기만 383.1% 급증해 품목 간 양극화를 키웠다.
온 세계가 같은 이유로 샀다
지역별 ICT 수출 증가율은 미국 306.5%, 중국 227.9%, 인도 126.7%, 베트남 81.4%, EU 49.1%다. 특정 시장의 호재가 아니라 글로벌 빅테크의 AI 설비투자라는 단일 변수가 모든 시장을 동시에 끌어올렸다는 신호다. 반대로 말하면 그 투자가 꺾일 때는 모든 시장이 함께 식는다.
| 지역 | ICT 수출 증가율 |
|---|---|
| 미국 | +306.5% |
| 중국 | +227.9% |
| 인도 | +126.7% |
| 베트남 | +81.4% |
| EU | +49.1% |
원화 강세에도 달러가 쌓이는 까닭
한국은행이 14일 발표한 8월 수출물가는 전월보다 3.7% 내려 3년 8개월 만의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원화 강세가 수출 단가를 깎는 데도 달러 표시 수출이 사상 최대라는 건 가격 상승 압력이 환율 역풍을 웃돌 만큼 크다는 뜻이다. 문제는 그 이득이 메모리를 파는 극소수 기업과 지역에 집중된다는 점이다. 디지털데일리는 사설에서 '국민은 체감하지 못하는 국민소득 4만 달러, 수출 4강'이라고 짚었다. 숫자의 잔치와 체감의 공백이 벌어진 국면이다.
반론 — 쏠림이 곧 위험은 아니다
비교우대에 따른 전문화로 볼 여지도 크다. AI 인프라 투자가 이어지는 한 메모리 초과 수요는 구조적이며, 흑자가 쌓이면 기업은 다음 사이클을 준비할 재원을 확보한다. 실제로 ICT 수출은 올해 6월부터 석 달 연속 500억 달러를 넘겼다. 집중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 사이클의 높이와 지속 기간을 문제 삼는 편이 정확하다.
61%는 저력이 아니라 진폭이다
메모리는 가격이 오를 때 가장 크게 벌고 떨어질 때 가장 크게 흔들리는 품목이다. 수출 비중 61%는 호황기엔 성장의 배율이지만 가격이 정점을 지나면 하락의 배율로 바뀐다. 정부와 국회가 할 일은 이 순간의 세금과 규제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하강 국면의 충격을 줄이는 일이다. 노동·세제·규제의 예측 가능성을 지켜야 반도체로 번 돈이 비메모리, 서비스, 다른 제조업으로 흐를 길이 생긴다. 사이클은 반드시 물음을 가져온다. 물음이 오기 전에 답을 마련해 둔 나라만 흑자를 지킨다.
분석 근거: 산업통상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 '8월 ICT 수출입 동향' 발표 보도(뉴스1·서울경제·미디어펜·연합뉴스), 한국은행 수출입물가동향 발표 보도(연합뉴스), 디지털데일리 사설. 공개 데이터·보도에 근거한 분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