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로 벌고 챗GPT 구독료로 새는 나라
한국 경제는 지금 두 개의 장부를 쓰고 있다. 하나는 코스피 7000과 반도체 수출 호조가 적힌 성적표고, 다른 하나는 16년 만 최악의 적자다. 한국은행이 9월 17일 발표한 '2026 상반기 지식서비스 무역통계(잠정)'를 보면 상반기 지식서비스 수지는 64억4000만달러(약 8조8900억원) 적자였다. 반기 기준으론 2010년 하반기(-70억달러) 이후 최대다. 물건으로 버는 돈이 늘어도, 지식을 사 쓰는 값이 그보다 빨리 늘어난다는 뜻이다.
수출보다 빨리 늘어나는 '지식 수입'
상반기 지식서비스 수출은 203억60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억5000만달러 늘는 데 그쳤다. 수입은 249억1000만달러에서 268억달러로 18억9000만달러 불었다. 수입 증가폭이 수출의 7배가 넘는다. 적자폭은 1년 만에 48억달러에서 64억4000만달러로 커졌다.
| 유형 | 2025 상반기 | 2026 상반기 |
|---|---|---|
| 지식재산권 사용료 | -30.2억달러 | -49.0억달러 |
| 전문·사업서비스 | -45.5억달러 | -46.7억달러 |
| 정보·통신서비스 | +23.2억달러 | +24.2억달러 |
| 문화·여가서비스 | +4.5억달러 | +7.2억달러 |
AI 사용료 적자, 역대 최대
적자 확대의 핵은 지식재산권 사용료다. AI 서비스 사용료가 포함된 컴퓨터·모바일 소프트웨어 저작권 수지는 -23억1000만달러에서 -28억4000만달러로 벌어지며 반기 기준 역대 최대 적자를 기록했다. 해외 OTT 구독료가 포함된 멀티미디어 저작권은 +2억9000만달러 흑자에서 -4000만달러 적자로 반년 만에 부호가 바뀌었다. 박성곤 한국은행 국제수지팀장은 반도체 관련 해외 산업용 소프트웨어와 게임 등 디지털 서비스 사용료 지급, 해외 OTT·AI 구독이 적자 확대에 기여했다고 분석했다.
K팝이 벌고 플랫폼이 샌다
버는 쪽도 분명하다. 문화·여가서비스는 7억2000만달러 흑자로 반기 기준 최대다. K팝 공연·전시 흑자는 2억4000만달러에서 3억3000만달러로, 해외 OTT용 드라마 제작 흑자는 2억9000만달러에서 3억8000만달러로 커졌다. 반면 앱스토어 등 디지털 중개 플랫폼 경유 거래는 수출 29억7000만달러, 수입 64억5000만달러로 34억8000만달러 적자다. 기업별로는 중견기업이 11억9000만달러 흑자를 낸 반면 대기업은 30억3000만달러 적자다. 지역별로는 북미와 유럽에 각각 33억2000만달러, 22억5000만달러를 지급했다.
"당분간 유지될 수밖에 없다"는 반론
이 적자를 문제로만 볼 수 없다는 반론도 있다. 박 팀장은 "우리 경제의 기본 구조가 해외 첨단기술을 들여와 부가가치를 높인 IT 제품을 수출하는 방식"이라며 적자 흐름이 당분간 유지될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남의 기술을 제값 주고 사서 그보다 큰 부가가치를 수출로 회수하는 구조라면 사용료 지급은 비용이자 투자라는 해석이다. 게임산업(흑자 19억7000만달러)과 음악산업(6억6000만달러)이 보여주듯 벌어들이는 힘도 커지는 중이다.
호황이 커질수록 커지는 임차료
문제는 지급의 성격이다. 반도체 설비는 한 번 사면 자산이 되지만 AI·OTT 구독료는 끊지 않는 한 매달 나가는 임차료다. 코스피 7000을 떠받치는 반도체·AI 붐일수록 해외 소프트웨어 지급은 커지는 구조다. 수출이 사상 최대를 찍은 해에 지식수지 적자가 16년 만 최악을 기록했다는 사실 자체가, 호황의 상당 몫이 해외 기술 사용료 형태로 국경 밖으로 새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임차료를 줄일 지렛대는 국산 SW·AI의 경쟁력뿐이다.
분석 근거: 한국은행 '2026 상반기 지식서비스 무역통계(잠정)' 발표, 한겨레·서울경제·아시아경제·더파워뉴스 보도. 공개 데이터·보도에 근거한 분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