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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전기를 삼킨다, 한국은 줄을 못 만든다

류근웅류근웅 기자· 2026. 8. 26. AM 9:02:37· 수정 2026. 8. 26. AM 9:02:47

AI 산업은 지금 두 개의 얼굴을 하고 있다. 빅테크는 데이터센터에 수백조 원을 쏟아붓고, 그 데이터센터는 국가 하나를 통째로 삼킬 만큼의 전기를 요구한다. 문제는 전기를 만드는 속도보다 전기를 원하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점이다. 한국은 그 격차가 유독 크게 벌어지는 나라 중 하나다.

세계는 지금 전기를 놓고 경쟁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은 2025년 447TWh에서 2026년 565TWh로 26% 늘었고, 2027년에는 702TWh까지 오를 전망이다. AI 최적화 서버만 떼어봐도 2025년 175TWh에서 2027년 258TWh로 커져, 조만간 일반 서버 소비량을 넘어선다. 이 증가분을 감당하려고 구글·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메타·오픈AI 등 '빅5' 하이퍼스케일러는 2026년에만 약 725억 달러를 AI 인프라에 투입할 계획이다. 데이터센터 전력만으로 2027년 세계 소비량이 한국 전체 전력 소비량(625TWh, 2025년 기준)을 넘어선다는 계산도 나온다.

한국, 수요는 있는데 줄이 안 늘었다

국내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2020년 398MW에서 2025년 1,000MW를 넘겼고, 2029년에는 1,569MW까지 커질 것으로 업계는 본다. 9년 새 4배 가까이 뛰는 셈이다. 그런데 이 수요의 73.4%가 서울·경기·인천에 몰려 있고, 수도권 상업용 데이터센터 가동률은 이미 평균 92.43%에 달한다. 더 심각한 건 신규 건설 인허가 병목이다. 데이터센터 신규 건설을 위한 전력계통영향평가 승인율은 195건 중 4건, 2.1%에 그친다. 전력망 신규 구축 사업 31곳 가운데 26곳이 건설 지연 상태라는 조사도 있다. 투자는 준비돼 있는데 줄 설 자리가 없는 구조다.

원전이 싸다는 계산, 정치가 못 따라간다

발전원별 정산단가(2024년)를 보면 원자력이 kWh당 54.98원으로 LNG(214.21원)의 4분의 1 수준이다. AI 데이터센터처럼 24시간 안정적으로 대량 전력을 쓰는 시설에는 이 격차가 그대로 원가 경쟁력으로 직결된다. 소형모듈원전(SMR)이 데이터센터 인근에 분산 배치되면 송전 비용을 37%까지 줄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는 2026년 2월 SMR 특별법을 통과시키고 창원·부산·경주에 제작지원센터를 짓기로 했지만, 국내 i-SMR은 2026년에야 표준설계인가를 신청하는 단계다. 전 세계적으로도 상용 가동 중인 SMR은 아직 한 건도 없다.

항목2025년전망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소비447TWh2030년 1,200TWh↑
국내 데이터센터 전력수요1,000MW↑2029년 1,569MW
원전/LNG 정산단가(2024)54.98원/214.21원kWh당, 약 4배 차이

특별법은 나왔지만 시차가 남는다

국회는 2026년 5월 비수도권 AI 데이터센터에 한해 전력계통영향평가를 면제하고, 발전사업자와의 직접 PPA를 허용하며, 인허가를 150일 안에 끝내는 타임아웃제를 담은 AIDC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문제는 이 법이 9개월 유예를 거쳐 2027년 2월에야 시행된다는 점이다. 투자 결정은 지금 이뤄지는데 규제 완화는 반년 넘게 뒤에 온다. 그 사이 기업들은 비수도권 이전 대신 수도권 인허가 대기줄에 남는 쪽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

규제 완화가 만능은 아니다

다만 계통영향평가 면제와 SMR 확대를 서두르는 데는 반론도 있다. 계통영향평가는 원래 특정 지역 전력망 과부하나 정전 위험을 사전에 걸러내는 안전장치이고, SMR은 아직 상용 실적이 없는 기술이라 안전성·폐기물 처리 비용을 낙관적으로 계산하면 나중에 청구서가 커질 수 있다. 속도를 내려는 규제 완화가 검증 절차 자체를 생략하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도록 하는 견제는 남겨둘 필요가 있다.

한국의 AI 경쟁력은 반도체·모델 어느 한쪽이 아니라 전기를 제때 공급하는 행정 속도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승인율 2.1%라는 숫자는 기술이 아니라 절차가 병목이라는 사실을 가리킨다. 시장이 이미 투자를 결정한 곳에서 정부가 줄을 세우는 쪽이 아니라 줄을 없애는 쪽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AI 인프라 경쟁에서 한국은 자본이 아니라 서류 때문에 뒤처지게 된다.


분석 근거: IEA, 전기신문, 전자신문, 한국데이터경제신문, 파이낸셜뉴스. 공개 데이터·보도에 근거한 분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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