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켜는 전기요금 청구서, 누가 받나
AI는 지금 두 개의 얼굴을 하고 있다. 하나는 5분 만에 홈페이지를 만들고 무료로 영상을 분석해주는 편리한 얼굴이고, 다른 하나는 원전 7기 분량의 전력을 새로 요구하는 청구서의 얼굴이다. 서비스는 화면 안에서 조용히 작동하지만, 그 뒤에서는 GPU 랙과 냉각탑이 쉬지 않고 전기를 태운다. 청구서는 이미 발송됐고, 문제는 누가 이 돈을 낼 것인가다.
숫자로 보는 전력 갈증
가트너 집계에 따르면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은 2025년 447TWh에서 2026년 565TWh로 26% 늘어난다. 이 중 AI 특화 서버의 소비량은 2025년 95TWh에서 2026년 175TWh로 84.2% 급증하며, 2026년 기준 전체 데이터센터 전력의 31%를 차지한다. 가트너는 2030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가 1,200TWh를 넘어설 것으로, 전력 수요는 2025년 104GW에서 2030년 290GW로 2.8배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별도 분석에서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가 2024년 415TWh에서 2030년 약 945TWh로 늘어난다고 추산해, 기관마다 수치는 다르지만 방향은 같다.
한국의 청구서는 더 구체적이다
한국은 이미 숫자가 잡혀 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에 따르면 용인·호남 반도체 산단과 AI데이터센터(AIDC)에서 나오는 '확정적 전력수요'만 30GW에 달하고, 수송·난방 전기화 등 잠재 수요까지 더하면 2040년까지 50GW 이상이 추가로 필요하다. 국내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는 2024년 5TWh에서 2040년 31.6TWh로 6배 이상 늘어날 전망이며, 이는 1.4GW급 원전 약 7기의 연간 발전량과 맞먹는다. 정부는 이를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해 신규 원전과 SMR(소형모듈원자로) 추가 건설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수도권에 몰리는 전력, 못 버티는 계통
문제는 수요의 위치다. 2024년 8월부터 2025년 6월까지 접수된 데이터센터 전기사용 신청 290건 가운데 195건이 수도권에 몰려 있다. 계통이 감당할 수 있는 용량은 한정돼 있는데 신청은 특정 권역에 집중되니, 접속 대기와 계통 포화가 동시에 벌어진다. 지방에는 세제 지원과 인센티브로 유인하고 수도권에는 계통 접속 기준을 강화하는 이원화 대책이 거론되는 이유다. 하지만 인센티브만으로 기업이 지방을 택하게 만들기는 쉽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 데이터센터는 저지연 통신망과 인력 접근성 때문에 수도권을 떠나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입장이다.
SMR은 구원투수가 될 수 있는가
한국은 2026년 2월 SMR 특별법을 통과시켰고, i-SMR 170MWe 표준설계인가를 2028년 목표로 추진 중이다. 하지만 실제 상용 발전은 2030년대 초반 이후에나 가능하다. 지금 짓겠다고 발표하는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산단의 전력 수요는 2020년대 후반부터 몰려드는데, 이를 메울 저탄소 기저 전원은 최소 5년 이상 뒤에나 온다는 뜻이다. 그 공백을 재생에너지와 기존 원전 가동률로 메우려는 시도가 병행되지만, 간헐성과 계통 안정성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는다.
비용은 결국 누군가의 몫이다
전력망 증설과 신규 발전 설비는 공짜로 생기지 않는다. 데이터센터를 유치한 지역은 세수와 일자리를 얻지만, 전력 요금 인상분과 송전선 부지 갈등은 전 국민이 나눠 지는 구조다. AI 서비스가 무료 또는 저가로 확산될수록, 그 뒤의 전력 비용은 소비자 요금과 세금이라는 형태로 되돌아온다. 지금 필요한 논의는 AI를 더 쓸 것이냐가 아니라, 그 전기값을 누가 언제 어떻게 지불하느냐다.
분석 근거: 전자신문, ZDNet Korea, 디지털타임스, 머니투데이, IEA 'Energy and AI' 보고서, 가트너(Gartner) 전망. 공개 데이터·보도에 근거한 분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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