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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231조 벌어도, 시계는 못 늦춘다

류근웅류근웅 기자· 2026. 7. 18. PM 5:02:21· 수정 2026. 7. 18. PM 7:05:16

국민연금은 지금 두 개의 숫자를 동시에 들고 있다. 하나는 2025년 한 해 벌어들인 운용수익 231조 6000억 원, 역대 최고 수익률 18.82%다. 다른 하나는 생산연령인구 100명이 부양해야 할 고령 인구 비율이 2050년 77.3명까지 치솟는다는 통계청 추계다. 앞의 숫자는 기금 소진 시점을 뒤로 미루고, 뒤의 숫자는 그 유예를 계속 갉아먹는다. 두 힘의 줄다리기가 이번 재정계산의 실체다.

소진 연도는 늦춰졌지만, 늦춘 주체가 다르다

2023년 5차 재정추계에서 국민연금 기금 소진 시점은 2056년이었다. 2025년 3월 국회를 통과한 연금개혁법으로 보험료율이 9%에서 13%로, 소득대체율이 43%로 조정되면서 소진 시점은 2064년으로 8년 늦춰졌다. 여기에 2025년 결산에서 기금 규모가 1458조 원으로 불어나자 복지부는 소진 시점을 다시 2069년으로 5년 더 늦춰 잡았다.

문제는 늦춘 폭의 대부분이 제도 개혁이 아니라 증시 호황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보험료율·소득대체율 조정으로 번 시간은 8년, 지난 1년의 투자수익으로 번 시간은 5년이다. 국내 증시가 코스피 7000선을 뚫는 국면에서 나온 수익을 구조 개선처럼 발표하는 것은 순서가 바뀐 셈법이다.

기금 소진 시점 변화 추이

시점예상 소진연도근거
2023년 5차 재정추계2056년기존 보험료율 9% 유지
2025년 3월 연금개혁법 통과 후2064년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3%
2025년 12월 결산 반영2069년기금 1458조 원, 수익률 18.82%
기금수익률 5.5% 목표 달성 시(정부 전망)2078년수익률 1%p 추가 제고 가정

부양비라는 분모는 개혁이 못 건드린다

생산가능인구는 2023년 3657만 명에서 2044년 2717만 명으로 900만 명 넘게 줄어들 전망이다. 노년부양비는 2018년 생산가능인구 5.1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던 구조에서 2050년 1.3명이 노인 1명을 떠받치는 구조로 바뀐다. 보험료율을 13%까지 올려도, 수익률을 5.5%로 끌어올려도 이 분모 자체는 줄지 않는다. 2033년 보험료율 인상이 끝난 뒤에도 인구 감소는 멈추지 않는다는 뜻이다.

시장 수익률에 재정을 맡기는 방식의 위험

1년 만에 5년치 연금 지급액을 벌어들인 성과는 분명 이례적이다. 하지만 18.82%라는 수익률은 반복 가능한 평균이 아니라 특정 해의 결과다. 1988년 이후 누적 연평균 수익률은 8.04%로, 지난해 수치와는 거리가 멀다. 소진 시점 전망이 매년 결산 성적에 따라 8년, 5년씩 출렁인다면 그 전망 자체가 정책의 기준점이 되기 어렵다. 국가가 강제로 걷은 보험료를 시장에 넣고 그 등락으로 재정 건전성을 설명하는 구조는, 개인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던 자산운용의 기회비용을 국가가 대신 떠안는 방식이기도 하다.

반론: 개혁 자체는 18년 만의 진전이다

2007년 이후 멈춰 있던 연금개혁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그 자체로 평가할 부분이다. 보험료율 인상과 소득대체율 조정은 세대 간 부담을 재조정하려는 시도였고, 정부는 기금운용 고도화로 수익률을 구조적으로 높이겠다는 목표를 별도로 제시했다. 정치적으로 인기 없는 보험료 인상을 관철한 점은 이전 정부들이 회피해 온 과제를 넘어선 것이다.

남은 과제는 분모다

보험료율과 수익률은 정책과 시장이 각각 밀어붙일 수 있는 변수지만, 인구 구조는 지금 태어나는 아이 수가 결정한다. 2026년의 소진 연도 발표가 반가운 뉴스로 소비되는 사이, 2050년의 부양비 곡선은 그대로 가팔라지고 있다. 다음 재정계산에서 다시 증시가 꺾이면 소진 연도는 언제든 되돌아갈 수 있다는 점을, 이번 발표의 각주로 함께 읽어야 한다.


분석 근거: 보건복지부 보도자료, 국민연금공단(NPS), 이코노미스트, 뉴스핌, 통계청 장래인구추계. 공개 데이터·보도에 근거한 분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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