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nUp 합의금 300%는 진짜일까
합의금 300% 오른 게 진짜일까. 미국 인신상해(PI) 소송 플랫폼 EvenUp이 Anthropic 고객사례 페이지에 올린 숫자다. 서류 작성 시간이 8~15시간에서 15분으로 줄었고, 증거를 갖춘 AI 초안 덕에 합의 제안액이 300% 늘었다는 주장인데, 둘 다 EvenUp 자신이 낸 수치라는 점을 먼저 짚어야 한다. 파라리걸의 형광펜과 스톱워치를 대체한 것은 맞는데, 그 대체가 재판정 밖에서도 버티는지는 다른 문제다.
형광펜 든 사람이 사라진 자리
EvenUp은 미국 전역 솔로 변호사와 다주(多州) 로펌이 쓰는 서류 작성 플랫폼이다. 캘리포니아의 한 로펌은 1500건이 넘는 사건을 굴리면서 요구서(demand letter) 작성을 직원 한 명에게 몰아 45일치 적체를 만들었고, 오하이오의 로펌은 의료 기록을 손으로 정리해 사건 한 건에 8~15시간을 썼다고 한다. Anthropic이 공개한 자사 고객사례 기준으로 EvenUp은 이 병목을 Claude Opus 4.8로 뚫었다고 설명한다. 디스커버리 응답 시간은 5시간에서 30분으로, 소규모 사건의 과거 의료비 합산 정확도는 14% 올랐다.
핵심은 처리 방식이다. 텍스트는 그대로, 스캔본은 OCR, 체크박스 서식은 비전 모델까지 단계를 올려가며 읽고 모든 사실에 원본 페이지 출처를 붙인 뒤에야 초안을 쓴다. 숫자 하나가 틀리면 보험사 손해사정인이 요구서 전체를 깎아내릴 수 있다는 실무자의 말이 이 설계의 이유다.
같은 문서 작업, 다른 잣대
법률 문서 자동화를 자기 사례로 내세운 곳은 EvenUp만이 아니다. OpenAI도 법률AI 스타트업 Harvey 사례를 자사 페이지에 올리며 변호사 100명 중 86명이 AI 답변을 수정 없이 그대로 고객에게 보냈다는 통계를 제시했다. 시간 단축이 아니라 '수정 없이 통과' 비율이라 EvenUp과 잣대는 다르지만, 두 벤더 모두 자사 플랫폼 사례를 자사가 검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 회사 | 붙인 업무 | 지표 | 변화 | 출처 |
|---|---|---|---|---|
| EvenUp | PI 소송 요구서·디스커버리 응답 작성 | 서류 작성 시간 | 8~15시간 → 15분 | Anthropic 고객사례 |
| Harvey(OpenAI 사례) | 법률 질의 응답 초안 | 수정 없이 발송 가능 비율 | 100건 중 86건 | OpenAI 고객사례 |
검수 없이 돌아가면 벌어지는 일
레딧 r/AI_Agents에는 사내 HR 챗봇을 4개월 굴린 뒤 올라온 글이 있다. 연봉 협상 조언은 하지 않는다고 못박고 출시 때 전부 걸러졌던 질문인데, 아무도 공격하지 않았는데도 경계 질문 거부율이 매주 조금씩 낮아지다가 결국 금지된 답을 내놓기 시작했다는 내용이다(익명 커뮤니티 글이며 검증된 사실은 아니다). EvenUp이 강조하는 '사실을 한 번에 정리하고 그 뒤엔 쓰기만 한다'는 설계도 결국 사람이 주기적으로 감사해야 유지되는 장치다. 파일럿 단계에서 정확도를 잡아둔 시스템이 실제 부하가 걸린 뒤에도 같은 정확도를 유지하는지는 벤더 사례집에 나오지 않는다.
한국에서 붙이려면
한국 로펌이나 손해사정 부서가 같은 걸 하려면 우선 의료기록·진단서의 표준화 수준부터 다르다. 미국은 병원마다 다른 서식이라도 영어 텍스트 OCR로 잡히지만, 한글 손글씨 소견서나 스캔 품질이 들쭉날쭉한 국내 병원 서류는 비전 모델 단계에서 오독 확률이 올라간다. 변호사법상 법률 서면 작성 주체 문제, 그리고 보험사와의 합의 협상에서 AI가 만든 증거 정리표를 상대가 어디까지 인정할지도 미국과 다른 변수다. 감사 없이 붙이면 EvenUp이 경계했던 바로 그 상황, 즉 조용히 틀린 자신감 있는 문장이 그대로 발송되는 상황을 피하기 어렵다.
분석 근거: Anthropic 고객사례(EvenUp), OpenAI 고객사례(Harvey), r/AI_Agents. 공개 자료에 근거한 분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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