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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는 슈퍼사이클, 전력망은 절벽

류근웅류근웅 기자· 2026. 8. 30. AM 9:03:15· 수정 2026. 8. 30. AM 9:03:24

메모리 반도체 업계는 지금 축포를 쏘고 있다. HBM 수요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을 밀어올리고 코스피는 사상 처음 7000선을 넘었다. 그런데 그 호황을 떠받치는 축, 즉 전기를 공급하는 전력망은 이미 절벽 앞에 서 있다. AI 데이터센터가 쓸 전력이 원전 한 기 몫을 통째로 삼키는 규모로 불어나는 동안, 그 전기를 어디서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결정은 자꾸 뒤로 미뤄지고 있다.

8배로 불어난 신청량, 절반도 못 채운 공급

파이낸셜뉴스가 인용한 자료를 보면 한전에 접수된 데이터센터 전기 사용신청 용량은 2023년 906㎿에서 2027년 7343㎿로 약 8배 늘었다. 전자신문과 한국데이터센터연합회가 공동 발표한 '한국 데이터센터 시장 2026~2029' 보고서는 국내 상업용 데이터센터의 IT 전력 공급 가능량이 2020년 398㎿에서 2025년 1000㎿를 넘겼고 2029년에는 1569㎿까지 늘어난다고 전망했다. 9년 만에 4배 확대되는 속도인데, 신청 물량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구분수치시점
데이터센터 전기 사용신청 용량906㎿ → 7343㎿2023년 → 2027년
국내 데이터센터 IT전력 공급량398㎿ → 1569㎿2020년 → 2029년(전망)
수도권 민간 데이터센터 비중73.4%2026년 기준
수도권 데이터센터 가동률92.43%2026년 기준(포화)

(자료: 파이낸셜뉴스, 전자신문·KDCC '한국 데이터센터 시장 2026~2029')

수도권에 다 몰렸다

전자신문 조사에 따르면 국내 민간 데이터센터의 73.4%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고 가동률은 평균 92.43%로 사실상 포화 상태다. 계획 중인 신규 데이터센터의 65%도 다시 수도권을 겨냥한다. 반면 서울의 전력 자립도는 11.6%에 불과하다는 파이낸셜뉴스 보도가 나올 만큼, 소비지와 생산지의 거리는 갈수록 벌어진다. 송전망을 새로 깔아야 하는데 부지 확보와 주민 수용성 문제로 공사 기간이 길어지는 구조는 그대로다.

요금표는 손댔지만, 발전 카드는 아직이다

정부도 손을 놓고 있지는 않다. 산업용 전기요금은 1977년 이후 49년 만에 개편돼 낮 시간 요금은 내리고 심야 요금은 올렸고, 2026년부터는 발전소가 몰린 부산·울산·충남은 싸지고 수도권은 비싸지는 지역별 차등요금제가 시행된다. 뉴스핌 보도를 보면 기후에너지환경부는 8월 4일 업무보고에서 호남 반도체·AI 데이터센터용 7.5GW 전력망 구축과 재생에너지 100GW 조기 달성, BESS 12GW 확대 계획을 내놨다. 가격 신호를 시장에 맞게 조정하는 방향은 옳다. 문제는 그 요금을 채울 발전량 자체가 여전히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원전 카드, 결정은 자꾸 미뤄진다

같은 업무보고에서 신규 원전과 SMR(소형모듈원전) 도입 규모는 '대국민 공론화를 통해 추후 결정'한다고만 밝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35년 SMR 발전, 2039년 핵융합 실증을 목표로 잡았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연구개발 일정이지 전력난에 당장 대응할 시간표는 아니다. AI 전력 수요는 매년 신청 물량 기준 배 단위로 불어나는데, 정작 원전처럼 건설에 수년이 걸리는 발전원의 착공 여부는 공론화 절차에 묶여 있다. 규제와 인허가 지연이 병목이라는 지적은 반도체 산단 전력망에서도 반복돼온 얘기다.

신중론에도 근거는 있다

원전·SMR을 서두르자는 주장에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방사성 폐기물 처리 계획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물량만 늘리는 건 위험하다는 지적, 송전선로 건설 과정에서 이미 밀양 사례처럼 주민 갈등이 누적됐다는 경험도 무시할 수 없다. 재생에너지와 BESS 조합으로도 상당 부분 대응이 가능하다는 기후에너지환경부 계획 역시 근거 없는 낙관은 아니다. 다만 그 계획이 신청 물량 증가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을지는 아직 숫자로 증명되지 않았다.

전력망 확충과 요금 개편은 방향을 잡았지만 실제 발전 용량을 늘리는 결정은 공론화라는 이름의 대기열에 서 있다. AI 반도체 수출로 벌어들이는 이익이 전력 공급 지연으로 발이 묶이는 순간, 그 손실은 기업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 전체가 떠안는다.


분석 근거: 파이낸셜뉴스, 전자신문·한국데이터센터연합회(KDCC), 뉴스핌, 한경매거진. 공개 데이터·보도에 근거한 분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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