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진료, 법은 문 열었는데 규칙이 반쯤 닫았다
12월 24일 개정 의료법이 시행되면 비대면진료가 처음으로 법제화된다. 그런데 문을 연 법과 달리, 문을 반쯤 닫는 하위 규칙이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보건복지부가 10월 19일부터 11월 9일까지 입법예고한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은 초진 처방을 7일치로 묶고, 30일치는 한 차례만 허용한다. 법은 시장을 열었는데 규칙이 환자의 발목을 잡는 구조다.
재진 중심에 주소지 잣대까지
개정안의 뼈대는 재진 중심이다. 비대면진료는 원칙적으로 같은 의료기관에서 6개월 안에 같은 증상으로 대면진료를 받은 환자에게만 허용된다. 대면 이력이 없는 초진은 주민등록상 주소지(실거주지 등록 시 실거주지)와 같은 시·도의 의원급 기관으로 제한된다. 희귀질환자, 1형 당뇨병 환자, 등록장애인, 장기요양수급자만 예외다. 직장과 주소지가 다른 사람이 흔한 나라에서 주소지 잣대가 무슨 의료적 의미를 갖는지, 개정안 어디에도 설명이 없다.
"장기 처방은 카드 혜택이 아니다"
가장 논쟁적인 조항은 처방일수다. 초진은 원칙적으로 7일 이내, 과거 진료·처방 이력과 치료 지속 필요성이 확인되면 한 차례에 한해 30일까지다. 원격의료산업협의회는 "비대면진료의 장기 처방은 단 한 번 제공되는 신용카드 혜택이 아니다"라며 반발했다. 이 협의회 자체 조사에서 만성·관리질환 이용자의 58.0%는 30일을 넘는 처방을 받아왔다. 7일 원칙이 그대로 적용되면 30일분 약을 받기 위해 최대 5차례 진료를 반복해야 한다. 환자의 시간·진료비 부담과 건강보험 재정 지출이 함께 불어나는 셈이다.
세 개의 상한,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 규제 장치 | 개정안 기준 |
|---|---|
| 초진 허용 지역 | 주소지와 같은 시·도 내 의원급(희귀질환자 등 예외) |
| 초진 처방일수 | 원칙 7일 이내, 연속 치료 시 한 차례만 30일 |
| 기관별 비중 | 반기 전체 진료건수의 30% 이내 |
| 의료인별 건수 | 의사 반기 월평균 500건, 치과·한의사 130건 |
| 중개 플랫폼 | 신고 의무, 누적 가입자 10만 명 이상 인증 의무 |
시행규칙은 양(量)까지 정한다. 의료기관별로는 반기 전체 진료건수의 30% 이내, 의사 1인당 반기 월평균 500건(치과·한의사 130건) 이내다. 야간·휴일 진료는 제외된다. 30%가 왜 30%이고 500건이 왜 500건인지 개정안은 밝히지 않는다. 안전에 꼭 필요한 최소치가 아니라 행정이 정하기 나름인 상한이라는 뜻이다.
반론: 7일은 데이터가 이미 말했다
| 주체 | 핵심 수치 | 입장 |
|---|---|---|
| 원격의료산업협의회 | 이용자 58.0%가 30일 초과 처방 | 장기 처방은 반복되는 의료서비스 |
| 대한개원의협의회 | 시범사업 초진 처방의 73.0%가 7일 이하 | 7일 원칙은 데이터와 일치 |
의료계의 반론은 숫자로 무장했다. 대한개원의협의회는 정부 시범사업 분석에서 초진 처방의 73.0%가 이미 7일 이하였다며, 초진에 한 달 치 약을 주면 부작용이나 진단 지연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마약·향정신성의약품과 비만치료제의 원칙적 처방 금지는 오남용 차단이라는 명분이 분명하다. 환자 안전은 시장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영역이고, 정부가 '안전성·남용 방지'에 무게를 실은 것은 규제의 정당한 출발점이다.
못 지킬 규칙은 법치를 갉아먹는다
문제는 설계다. 타 기관에서 30일 예외가 이미 쓰였는지 확인할 시스템이 없다는 것이 산업계와 의료계의 공통 지적이다. 확인 못 할 의무를 의료인에게 지우면 의료인은 30일 처방 자체를 피하고, 규칙이 만든 '예외'는 종이 위에만 남는다. 지킬 수 없는 벽을 세우는 것은 규제가 아니라 법치를 갉아먹는 일이다. 규칙의 성적표는 12월 24일 이후 대면 진료 대비 이용량, 재진 간격, 진료비 통계가 매긴다. 의견 접수는 11월 9일까지다. 상한의 숫자만큼은 시장이 아니라 근거가 정하도록 요구할 마지막 창이다.
분석 근거: 대한민국 정책브리핑(보건복지부 보도자료), 메디칼트리뷴, 일간보사. 공개 데이터·보도에 근거한 분석입니다.
데일리 브리핑 구독
매일 아침 핵심 뉴스를 이메일로 받아보세요.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