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공원 지하 일제 '조선군사령부' 터, 전문가들 "발굴하고 보존해야"
광복 81돌을 맞았지만, 일제 강점기 조선 청년들을 전쟁터로 내몬 '조선군사령부'의 터는 서울 용산의 용산어린이정원 주차장 지하에 묻혀 있다. 16일 일제의 조선 주둔군 역사를 연구해온 조건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조선군사령부는 일제 말 전쟁 시기 20만 명이 넘는 조선 청년을 전쟁터로 내몬 강제동원 정책의 핵심 기관"이라며, 이 주차장 지하에 남은 1청사 터를 발굴해 전쟁 피해의 실상을 보여주는 '기억의 장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군과 미군이 차지했던 용산기지 '사우스포스트' 일대가 임시 국가공원인 용산어린이정원으로 개방됐지만, 경내 식민지 침탈 유적인 1청사 터와 2청사 벙커, 조선총독관저 터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지 않았고 표석도 설치되지 않았다. 2018년 용산공원조성계획 기본설계 최종보고서는 유적 전면 발굴과 복원·정비, 나아가 2청사의 방문자 안내센터 활용까지 계획했지만 현실화된 것은 없다. 1940~41년 지은 콘크리트 건물인 2청사는 내부 실태가 학계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한미연합사 작전정보실 연습처로 쓰였던 탓에 국방부 소유 땅 위 건물의 소유권 이전 절차도 끝나지 않았다.
설계안만 바뀐 20년, 사업 정체성 우려
최근 5~6년 사이 조선군사령부와 총독관저 터에 대한 현황 조사가 보류되거나 방치되면서 학계의 비판이 높아졌다. 지난 6월 20일 서울 용산도시기억전시관에서 열린 제1회 용산공원역사포럼에는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와 조건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 등이 참석해 유산 조사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2016년부터 2022년까지 서울시에서 용산공원 조성 업무 주무관을 지낸 도시계획 전문가 김홍렬 박사는 특별법 제정 20주년을 앞두고 사업을 총괄하는 국토교통부가 역사성과 장소성에 대한 비전을 일관되게 실천하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정권이 바뀌면 이해관계에 따라 정비 설계안이 수시로 바뀌면서 신뢰와 추진 역량을 많이 소진했다"고 지적했다.
용산공원 조성은 1987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처음 공론화됐다. 2006년 용산 미군기지 이전이 가시화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원화 선포식과 이듬해 특별법 제정, 국토교통부 공원조성추진기획단 결성으로 본격 추진에 들어갔지만 정권 부침과 미군과의 협상 지연으로 종합기본계획이 4차례 변경 고시됐고 시설물·공간 타당성 조사만 6차례 이어졌다. 용산기지 약 243만㎡ 가운데 돌려받은 땅은 76만5천㎡이며, 이 가운데 남쪽 30만㎡가 윤석열 전 정부 때인 2023년 5월부터 시민 휴식공간으로 열렸다. 그러나 조선군사령부 터 등 핵심 유적의 발굴과 복원은 아직 표류 상태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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