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 200조, 일할 사람은 없다…K조선의 역설
한국 조선업은 지금 두 개의 얼굴을 하고 있다. 수주 장부는 3년 넘게 밀린 일감으로 두툼해졌는데, 정작 그 배를 용접할 손은 갈수록 줄어든다. 시장은 K조선에 역대급 발주로 화답하고 있지만, 현장은 사람을 못 구해 라인을 못 돌리는 모순에 빠져 있다.
숫자로 확인되는 슈퍼사이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HD한국조선해양·한화오션·삼성중공업 등 조선 빅3의 수주잔고는 약 135조원으로 3.5년치 일감에 해당한다. 올해 1분기 3사 합산 영업이익은 2조702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고, 1분기 수주액은 114억7000만달러, 5월 말 누적 수주는 200억달러를 넘어섰다. 클락슨리서치는 올해 LNG선 발주 수요만 150척 규모로 내다봤다. 친환경 고부가 선종에서 절대 경쟁력을 쥔 결과다.
| 지표 | 수치 |
|---|---|
| 조선 빅3 수주잔고 | 약 135조원(3.5년치) |
| 1분기 합산 영업이익 | 2조702억원(사상 최대) |
| 5월 말 누적 수주 | 200억달러 돌파 |
| 국민 생산직 근로자(2023→2025) | 8만7601명→7만2021명 |
줄어드는 숙련공, 늘어나는 빈자리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회원사 기준 국민 생산직 근로자는 2023년 8만7601명에서 2024년 7만8141명, 2025년 7만2021명으로 3년 연속 줄었다. 업황은 살아났는데 사람은 오히려 빠져나간 셈이다. 2015년 구조조정기에 임금이 깎이고 일감이 끊기며 떠난 숙련공 상당수가 돌아오지 않았고, 반도체 공장과 석유화학 단지로 이직한 인력은 회수되지 않았다.
외국인 인력으로 메운 공백
정부와 업계는 빈자리를 외국인 인력으로 채워왔다. 조선업 숙련기능인력(E-7-3)은 2022년 1017명에서 2025년 1만3297명으로, 비전문취업(E-9) 인력은 같은 기간 3180명에서 8079명으로 늘었다. 2026년부터는 E-9 조선업 별도 쿼터제가 폐지되고, 비수도권 제조업체의 외국인 추가 고용 한도도 20%에서 30%로 상향된다. 만성적 구인난을 규제 완화로 풀겠다는 신호다.
하청 구조라는 진짜 병목
조선업 노동자 7만1000명 중 하청 비중은 63%로, 전체 제조업 평균 19.2%의 세 배가 넘는다. 원청과 1차 협력사를 거쳐 아래로 내려갈수록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에 수렴한다. 산업재해 위험은 낮지 않은데 보상은 반도체·화학 공장에 못 미치니, 내국인 숙련공이 굳이 조선소를 택할 이유가 옅어진다. 노동계는 인력난의 근본 원인을 저임금 하청 구조로 지목하며, 비자 쿼터 완화만으로는 해법이 안 된다고 반박한다.
시장이 이미 답을 보내고 있다
일감이 넘치는데 사람이 없다는 건 결국 가격, 즉 임금이 시장 수준에 못 미친다는 신호다. 정부가 쿼터를 풀어 외국인 인력 유입을 앞당기는 건 급한 불을 끄는 방편이지만, 하청 단가와 임금 체계를 시장 신호에 맞게 재조정하지 않으면 숙련공 이탈은 반복된다. 200조원대 수주잔고를 실제 매출과 이익으로 바꾸는 속도는 조선소 바깥의 규제가 아니라, 조선소 안쪽의 임금표가 얼마나 빨리 현실을 따라가느냐에 달려 있다.
분석 근거: 이뉴스24, 더밸류뉴스, 뉴스투데이(N2), 헤럴드경제(mbiz), 매일노동뉴스, 프레시안. 공개 데이터·보도에 근거한 분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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