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조선, 점유율 19%인데 왜 웃나
숫자만 보면 한국 조선업은 지고 있다. 2026년 상반기 전 세계 선박 수주에서 중국이 72%를 쓸어 담는 동안 한국은 19%에 머물렀다. 그런데 같은 기간 한화오션과 HD현대의 주가와 수주 잔고는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물량은 내주고 몸값은 올리는 이 역설의 열쇠는 점유율표에 없다. 미국이 자국 조선업 재건을 한국 기업의 손에 맡기기로 한 '마스가(MASGA)' 프로젝트에 있다.
중국이 이긴 시장, 한국이 빠진 이유
클락슨리서치 집계를 인용한 국내 보도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전 세계 신조선 발주량은 4295만CGT로 전년 대비 66% 늘었고, 이 중 중국이 3100만CGT(72%)를 가져갔다. 한국은 797만CGT(19%)에 그쳐 격차가 53%포인트로 벌어졌다. 하지만 한국 조선사들은 이 격차를 방어할 생각이 없다. LNG운반선처럼 척당 단가가 높은 고부가 선종 위주로 수주를 걸러내는 전략을 택했고, 그 결과 척수는 밀려도 척당 수주 금액은 중국을 웃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시장 점유율이 아니라 이익률을 목표로 바꾼 것이다.
미국이 조선소 열쇠를 넘긴 순간
산업통상부와 미국 상무부는 지난 7월 23일 워싱턴에서 한·미 조선협력센터(KUSPC)를 열고 1500억달러 규모의 '마스가' 프로젝트 추진 거점을 마련했다고 헤럴드경제 등이 보도했다. 이 프로젝트는 한미 양국이 합의한 3500억달러 대미 투자펀드 중 조선 분야 몫으로, 한국 기업의 대미 직접투자(FDI) 형태로 국내외 은행 대출 보증을 받아 조달된다. 팀코리아 구성, 공급망 협력, 인력 양성, 공동 기술개발 4개 분야에서 15건의 MOU가 체결됐다. 자국 조선업이 수십 년째 쇠퇴한 미국이, 대체할 자국 기업이 마땅치 않으니 동맹국 민간 기업에 재건을 맡긴 셈이다.
실탄은 이미 투입됐다
한화오션은 2024년 말 필라델피아 소재 필리조선소 지분 100%를 약 1억달러에 인수하며 국내 기업 최초로 미국 조선소를 소유한 회사가 됐다. 이후 수요가 몰리자 50억달러를 투입해 설비를 현대화하고 연간 건조 능력을 10배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이투데이 등이 전했다. HD현대는 케르베로스캐피털매니지먼트와 손잡고 별도로 50억달러 규모 투자 프로그램에 나섰다. 두 회사 모두 상선 건조를 넘어 함정 공동설계, 무인수상정 개발까지 협력 범위를 넓히고 있어, 이번 진출이 단발성 수주가 아니라 미국 방산·해양 공급망에 발을 들이는 구조적 베팅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반론: 존스법이라는 벽
낙관만 할 계제는 아니다. 필리조선소가 짓는 선박은 미국 연안 운항 선박에 자국 건조·소유·선원을 강제하는 '존스법' 적용 대상이라, 한국 조선사가 아무리 기술력을 투입해도 결과물은 미국 국적 선박으로 귀속되고 시장 자체도 미국 연안 물동량 규모로 제한된다. 또 대미 투자펀드는 대출 보증 구조로 짜여 있어 환율·금리 변동에 따라 실제 투자 부담이 유동적이다. 미국 정치 지형이 바뀌어 대중 견제 기조가 완화되면 마스가의 정책적 우선순위도 흔들릴 수 있다.
점유율 경쟁에서 공급망 지분 경쟁으로
한국 조선업이 중국과 물량 경쟁을 포기한 대신 손에 넣은 것은 미국이라는 시장에 대한 지분이다. 이는 반도체·배터리에서 이미 벌어진 흐름과 같은 패턴이다. 대중 견제라는 지정학적 필요와 자국 산업 공백이라는 미국의 약점이 맞물릴 때, 기술력을 갖춘 동맹국 민간 기업이 그 틈을 메운다. 관건은 이 구조가 정치적 바람이 아니라 필리조선소의 실제 생산성 지표로 증명되는 시점이 언제냐다.
분석 근거: 헤럴드경제, 이투데이, 서울신문, 비즈니스포스트, 아주경제, 이비엔(EBN)뉴스센터, 디지털데일리 등 공개 보도에 근거한 분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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