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서 쫓겨난 K배터리, ESS로 흑자 돌아왔다…그런데 열쇠는 워싱턴이 쥐었다
한국 배터리 산업은 지금 두 개의 얼굴을 하고 있다. 전기차 시장에선 중국에 밀려 3사 모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지만, 같은 기간 미국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에선 관세 장벽이 오히려 호재로 작동하며 실적 반등을 이끌었다. 문제는 이 반등의 상당 부분이 시장 경쟁이 아니라 워싱턴의 정책 설계에 걸려 있다는 점이다.
전기차에선 이미 밀렸다
SNE리서치가 5월 8일 내놓은 집계에 따르면 2026년 1~3월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은 117.4GWh로 전년보다 17.4% 늘었다. 시장은 커졌는데 한국 3사는 반대로 걸었다. 이 기간 미국 전기차 판매가 28.4% 줄어든 타격이 그대로 배터리 수주로 연결됐다.
| 기업 | 2026년 1~3월 사용량 | 전년 대비 |
|---|---|---|
| LG에너지솔루션 | 20.3GWh | -0.1% |
| SK온 | 9.0GWh | -10.2% |
| 삼성SDI | 5.3GWh | -27.7% |
3사 합산 점유율은 29.6%로 1년 새 8.3%포인트 떨어졌다. 시장 자체가 성장하는데 점유율이 무너진다는 건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이 쌓은 58.4%의 벽
반등의 동력은 관세다. 미국은 2026년 1월 1일부터 중국산 ESS 배터리에 적용되는 무역법 301조 관세를 7.5%에서 25%로 올렸고, 기본 관세와 상호관세, 펜타닐 보복관세까지 겹치면 누적 부담은 58.4%에 달한다. 조선비즈가 지난해 9월 보도한 수치다. 그 결과 2025년 상반기 한국의 ESS용 리튬이온 배터리 대미 수출은 전년보다 84% 늘어난 9억3440만 달러를 기록했고, SNE리서치는 북미 ESS 시장에서 한국 기업 점유율이 2026년 64%, 2027년 86%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실적장에서 확인된 반등
2분기 실적은 숫자로 말한다. LG에너지솔루션은 매출 7조5602억 원에 영업이익 1133억 원으로 흑자로 돌아섰다. 1분기까지 2078억 원 영업손실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방향이 바뀌었다. 삼성SDI도 매출 3조7688억 원, 영업이익 2038억 원을 냈다. 조선비즈는 ESS를 "전기차 캐즘을 뚫은 구원투수"로 평가했다.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가 발주를 몰고 있고, SK온은 하반기부터 미국 조지아주 공장에서 ESS용 LFP 배터리 양산에 들어간다.
| 기업 | 2분기 매출 | 2분기 영업이익 |
|---|---|---|
| LG에너지솔루션 | 7조5602억 원 | 1133억 원 (흑자전환) |
| 삼성SDI | 3조7688억 원 | 2038억 원 |
경고, 반도체와 같은 패턴이다
그러나 이 흑자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 비즈워치 보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의 2분기 영업이익은 IRA 보조금 등을 빼면 1277억 원 손실이었다. 보조금이 없으면 본업은 아직 적자라는 얘기다. 수출 절반이 반도체인 한국 경제에 이제 배터리까지 미국 정책에 매인 구조가 하나 더 얹히고 있다. 58.4%의 관세가 지켜주는 시장에서 경쟁력을 시험받는 게 아니라, 워싱턴이 문을 얼마나 오래 닫아두느냐가 실적을 결정한다.
반론도 분명히 있다. 관세는 중국이 오랜 보조금으로 왜곡한 시장을 되돌리는 조치이고, ESS 수요 자체는 AI 데이터센터라는 실수요에서 나오는 구조적 성장이라는 해석이다. 미국 건설업계가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를 맞추려면 2026년에만 34만9000명의 신규 인력이 필요하다고 추산할 정도로 수요의 골은 깊다. 정책이 아니라 수요가 견인한다는 반박에 무게를 둘 여지는 충분하다.
두 해석이 갈리는 지점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다. 시장 신호를 보고 전기차 라인을 ESS로 돌린 기업은 살아남았고, 그렇지 못한 라인은 가동률로 벌칙을 받았다. 다만 지금의 흑자가 관세와 보조금이라는 두 겹의 정책 유리 너머에 있다면, 한국 배터리의 진짜 시험은 유리가 깨지지 않는 동안 원가 경쟁력을 회복하는 일이다. 반도체에서 이미 본 장면을 배터리에서 다시 보지 않는 길은 그것뿐이다.
분석 근거: SNE리서치 보도자료(2026년 1~3월 비중국 글로벌 EV 배터리 사용량),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 2026년 2분기 실적발표, 조선비즈(중국산 ESS 배터리 301조 관세 인상), 중앙일보(한국 ESS 배터리 대미 수출 84% 증가), 비즈워치(IRA 보조금 제외 시 LG에너지솔루션 영업손실). 공개 데이터·보도에 근거한 분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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