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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배상 소송: '납북 어부' 사건 항소심서 진실 공방

박당근박당근 기자· 2026. 5. 3. AM 10:00:41

1970~80년대 동해에서 북한에 납치되었다가 돌아온 어부들과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 변론기일에서, 당시 국가의 책임 여부를 두고 치열한 주장이 오갔다.

이들 어부들은 1970~80년대 조업 중 북한에 납치되었으며, 귀환 직후 수사기관에 의해 장기간 구금되어 조사를 받았다. 일부는 고문을 받으며 허위 자백을 강요당해 간첩 혐의로 처벌되기도 했고, 이후 수십 년간 사찰과 감시가 이어졌다. 원고 측 어부들은 국가가 최소한의 경비·구조 조치를 다하지 않아 납북을 막지 못했다는 책임을 주장했다. 피고 대한민국 측은 당시 해상 국방력과 경비 여건상 납북 방지가 어려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1심은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리며 국가의 '보호의무' 위반은 인정하지 않았다. 항소심에서는 납북 방지 능력 여부를 두고 양측의 입장이 충돌했다. 손해배상 소송의 핵심 쟁점은 납북 당시 국가의 책임이다. 원고 측은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배려하고 보호할 의무를 소홀히 했다고 주장했다. 피고 대한민국은 당시 해상 국방력과 경비 여건상 납치를 방지하기 어려웠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1심을 맡았던 춘천지방법원 속초지원은 피고 대한민국이 원고 김춘삼씨에게 당초 청구액 가운데 2200여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1심 재판부는 당시 국가가 어부들을 납치 과정에서 보호해야 할 객관적 주의의무를 소홀히 했다고 인정하기는 부족하다며 국가의 보호의무 위반을 부정했다. 항소심에서는 이 판단을 뒤집을 수 있는 쟁점이 제시되었다. 재판부가 지정한 군사전문가인 문장렬 전 국방대 교수는 당시 대한민국이 북한의 어선 납치를 막을 능력이 없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문 전 교수는 1971년 기준, 한미연합 전력을 포함한 전쟁 수행 능력 평가 시 북한에 압도적으로 우월했으며, 한국 해군은 어선 납치를 저지하거나 구출할 정도의 능력을 갖췄다고 보았다. 해상 군사 연습 빈도와 통신망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전문심리위원의 판단은 어부들이 북한에 납치되는 것을 막지 못한 국가의 무능함과는 별개로, 막을 수 있었음에도 막지 않았다는 국가의 책임을 부각할 가능성을 높였다. 어부들이 북한에 납치되는 것을 막지 못한 국가의 무능함과는 별개로, 귀환한 어부들에게 돌아온 것은 위로가 아닌 국가의 폭력이었다. 1심 판결문에 따르면, 김춘삼씨는 귀환 후 합동 신문 초기부터 철야 조사를 받고 북한을 찬양하고 특별 지령을 받았다는 허위 진술을 강요당하며 가혹행위를 겪었다. 그는 주먹으로 맞고, 전기 고문을 당했으며, 고춧가루 탄 물을 얼굴에 부어 숨쉬기 어렵게 만드는 고문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임복남씨 또한 비슷한 경험을 토로했다. 그는 어느 날 밤 권총을 든 보안대원에게 수갑을 찬 채 끌려가 군화발로 짓밟히는 등 폭행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국가 안보를 위한 조치가 국민 인권을 짓밟는 폭력으로 이어졌다는 주장은 국가가 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저버리고 오히려 가해 행위를 했음을 나타냈다. 이날 재판부는 전문심리위원의 의견과 어부들의 진술 등을 토대로 국가의 납북 방지 의무 위반 및 귀환 후 국가폭력에 대한 책임을 심리했다. 항소심의 결과는 납북 귀환 어부들이 겪은 국가폭력의 진실을 규명하고, 국가가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의 범위를 결정하는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보았다.

본 기사는 AI가 생성하였으며, 사람이 검수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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