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예산 88조의 관리자, 이제야 생겼다…권한은 '심의' 아닌 '협의'
한국의 인구 정책에는 돈이 모자란 적이 없었다. 2025년 저출산·고령사회 시행계획에만 중앙정부 예산 88조 원이 붙었다. 모자란 것은 돈이 아니라, 이 돈을 한곳에서 물어 책임지는 관리자였다. 9월 10일 21년 역사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간판을 내리고 '인구전략위원회'로 다시 출발했다. 간판은 컸는데, 세워진 권한은 당초 구상보다 한 단계 작다.
88조가 네 쪽으로 쪼개진 구조
한국재정학회가 지난달 공개한 논문(「인구정책 예산 사전심의제도 도입의 필요성 및 방안」, 재정학연구 게재)은 2025년 시행계획의 중앙정부 예산 약 88조 3000억 원을 뜯어봤다. 인구정책 20개 대과제에 평균 4.3개 부처가 관여한다. 한 과제에 사공이 넷꼴인 셈이다. 논문의 공동 저자인 김평식 경희대 교수 등은 "각 부처가 자기 예산을 극대화하려는 경향이 강해 자발적 협력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짚었다. 시행계획에 담긴 과제는 300개에 이른다.
| 항목 | 저출산고령사회위(2005~2026.9) | 인구전략위원회(신설) |
|---|---|---|
| 총괄 범위 | 저출생·고령화 | 청년·지역소멸·이민 등 인구구조 전반 |
| 위원 정수 | 25명 이내 | 40명 이내 |
| 참여 부처 | 9개 | 15개 |
| 전문위원회 | 없음 | 4개(사회전략·경제전략·조정평가·이주민) |
간판은 바뀌었고 범위는 넓어졌다
9월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현판식은 인구전략기본법 시행에 맞춰 진행됐다. 위원회는 하반기 중 '제1차 국가인구전략 기본계획'을 발표한다. 미래세대 희망, 모든 세대 공존, 함께 성장하는 지방, 포용적 열린 사회가 4대 지향점이다. 청년의 일자리·주거·자산 형성부터 혼인·출산까지의 구조적 문제와 외국인 300만 명 시대의 사회통합까지 범위에 넣었다. 10월에는 중앙부처와 시·도에 인구정책책임관 회의를 연다. 김진오 부위원장은 출범 직후 이민 문제의 전향적 검토를 언급했다.
'심의'가 '협의'로 준 이유
가장 주목할 대목은 예산 권한이다. 당초 구상은 사전심의였다. 위원회가 부처별 인구 예산의 증액·삭감을 판단하는 구조다. 시행령에 담긴 것은 사전협의다. 부처가 1월 말 의견을 내면 위원회가 4월 말까지 협의하고, 5월 말 예산요구서 제출 뒤 6월 말 종합 의견을 붙인다. 내년 1월 첫 가동된다. 차이는 명확하다. 협의 결과를 예산에 반영할 의무가 없다. 논문이 주문한 것은 "법적 구속력을 갖춘 실질적 권한"이었는데, 출범한 조직은 거기에 못 미친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88조의 상당 부분은 노후소득보장 등 법령으로 정해진 지출이어서, 위원회가 심의권까지 쥐면 예산 책임이 국회와 기획재정부에서 정수 40명의 위원회로 옮겨 간다. 조율은 필요해도 심의권은 또 하나의 관을 얹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쪽 논리다.
| 예산 흩어짐의 실태(논문 분석) | 수치 |
|---|---|
| 2025년 시행계획 중앙정부 예산 | 약 88조 3000억 원 |
| 인구정책 대과제 | 20개 |
| 과제당 평균 관여 부처 | 4.3개 |
첫 답안지는 내년 예산이다
출범과 동시에 비는 자리도 있다. 뉴스1은 올해부터 적용할 5개년 인구전략이 아직 없다고 짚었다. 하반기 기본계획이 그 빈자리를 메워야 한다. 조직도와 위원 정수는 행정의 자기소개일 뿐이다. 성패는 88조가 흩어져 집행되던 구조를 실제로 정리할 수 있는가, 즉 협의 결과가 내년 예산에 얼마나 반영되는가에서 갈린다. 첫 답안지는 머지않았다.
분석 근거: 이데일리, 연합뉴스, 경향신문, 뉴스1, 한국재정학회 「재정학연구」 논문(김평식 외). 공개 데이터·보도에 근거한 분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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