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준칙 10년째 표류, 나랏빚은 안 기다린다
나랏빚에는 브레이크가 없다. 정확히는, 브레이크를 달자는 법안만 10년째 국회 문턱 앞에서 멈춰 있다. 정부는 2026년 예산으로 727조9000억원을 편성해 5년 만에 법정기한 내 처리라는 기록을 남겼지만, 같은 예산안에 담긴 국가채무 비율은 GDP 대비 51.6%로 사상 처음 50%를 넘어섰다. 재정을 묶어둘 준칙은 없이 지출만 계속 늘어나는 구조가 고스란히 숫자로 드러난 셈이다.
재정준칙, 왜 10년째 법이 안 되나
재정준칙 법제화 시도는 2016년 박근혜 정부의 '재정건전화법' 제정안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가채무비율을 GDP 대비 45% 이내,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3% 이내로 묶자는 내용이었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20년 문재인 정부는 국가채무비율 60%, 통합재정수지 -3%를 기준으로 한 '한국형 재정준칙'을 발표하며 2025년 시행을 목표로 했으나 이 역시 입법에 이르지 못했다. 21대 국회에서도 국가재정법 개정안(의안번호 2107025 등)이 발의됐지만 처리되지 못한 채 임기만료로 폐기됐고, 22대 국회에서는 국가재정법 개정안만 160건 넘게 쌓였다.
숫자로 보는 채무비율의 궤적
기획재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5~2029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국가채무비율은 매년 오른다. 준칙이 있었다면 자동으로 제동이 걸렸을 구간이다.
| 연도 |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
|---|---|
| 2025년 | 49.1% |
| 2026년 | 51.6% |
| 2027년 | 53.8% |
| 2028년 | 56.2% |
| 2029년 | 58% |
2026년 국가채무 규모는 1415조2000억원으로 처음 1400조원을 넘어선다. 준칙 논의가 시작된 2016년 당시 상한선으로 제시됐던 45%는 이미 2020년대 초반에 넘어섰고, 2020년 준칙의 상한선인 60%도 2029년이면 근접한다.
왜 매번 국회에서 멈추는가
여야 모두 준칙 필요성 자체는 부정하지 않는다. 문제는 시행 시점과 예외 조항이다. 경기 침체·전쟁·팬데믹 같은 예외 상황에서 준칙을 유예할 수 있게 하자는 쪽과, 예외 조항을 넓히면 준칙이 사실상 무력화된다고 보는 쪽이 매 국회 회기마다 같은 지점에서 부딪힌다. 여기에 확장재정을 정책 기조로 삼는 정부·여당 입장에서는 준칙이 법으로 못 박히는 순간 재량이 줄어든다는 유인도 작용한다. 결국 발의는 반복되지만 통과는 반복되지 않는 구조가 10년 가까이 이어진 배경이다.
반론: 준칙이 능사는 아니다
준칙 법제화에 반대하는 쪽 논리도 근거가 없지는 않다. 한국은 기축통화국이 아니어서 재정 여력을 함부로 단정할 수 없고, 저출생·고령화로 의무지출이 구조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경직된 숫자 상한이 오히려 필요한 지출까지 막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국가재정법에는 이미 건전재정 노력 의무 조항이 있어 준칙이 없다고 재정 관리가 전무한 것도 아니다. 다만 이 의무 조항이 선언적 수준에 그친다는 점은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계속 유지되고 있는 현실이 보여준다.
작은 정부론이 설 자리
재정준칙은 특정 정당의 의제가 아니라 재정 지출에 스스로 제약을 거는 최소한의 장치다. 이 장치 없이 확장재정 기조가 이어지면 다음 정부, 다음 세대가 갚아야 할 채무만 누적된다. 국가채무비율이 60%에 근접하는 2029년이 되어서야 논의를 시작한다면 그때는 이미 선택지가 줄어든 뒤일 가능성이 크다. 준칙을 만드는 국회의 손은 매번 멈추지만, 채무비율을 계산하는 시계는 멈추지 않는다.
분석 근거: 대한민국 정책브리핑(korea.kr), 경향신문, 전자신문, 한국일보, 국회입법조사처(NARS). 공개 예산안·재정운용계획 자료에 근거한 분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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