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인종 없이 문 앞에 놓이는 택배는 배송 완료가 아니라 확인하는 노동과 분실의 위험을 손님에게 떠넘긴 것이다광장
문 앞 사진 한 장으로 끝나는 배송은 완료가 아니라 확인과 보관의 비용을 손님에게 넘긴 것이다.
초인종 소리도, 전화 한 통도 없이 문 앞에 놓인 상자와 사진 한 장. 최근 들어 이런 배송이 예외가 아니라 기본처럼 자리 잡았습니다. 상자는 분명 집 앞에 도착했지만, 그 상자가 주문한 사람의 손에 닿았는지를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배송은 끝난 것으로 기록되는데, 도착을 확인하는 일은 사라진 것입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됩니다.
택배사의 사정을 먼저 살피자면, 하루에 처리할 물량이 적지 않고 재배송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만큼 문 앞 배송이 부득이한 선택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사진이 남으니 증빙도 충분하다고 덧붙입니다.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사진은 상자를 내려놓았다는 증빙일 뿐, 상품이 손님의 손에 닿았다는 증명은 아닙니다. 사진은 남는데 확인은 사라지고, 증빙은 있는데 도착은 없습니다. 결과만 놓고 과정의 비용을 묻지 않는 것이라는 점에서 이 논리는 스스로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손님에게 떠넘겨진 것은 기다림뿐만이 아닙니다. 상자가 문 앞에 있는 동안 그것을 확인하고 안전하게 보관하는 노동은 고스란히 손님의 몫이 됩니다. 직장에 있다면 휴대전화 알림을 확인하고, 아파트라면 복도를 살피고, 재배송이 필요하면 직접 시간을 내야 합니다. 회사가 줄인 그 몇 분의 문턱 배송 시간 만큼, 수많은 손님의 확인 노동이 대신 채워지고 있는 셈입니다. 편의는 회사의 계량기에 올라가고 비용은 손님의 하루에 흘러 들어가는 것입니다.
더 무거운 것은 위험입니다. 분실과 도난이 생기면 책임 다툼이 시작됩니다. 지정 장소에 놓았다는 이유로 배상이 거부되거나, 분실 사실을 손님이 입증해야 하는 일이 반복된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상자를 내려놓는 행위는 끝났는데 책임은 어디로 사라졌습니까. 지정 장소라는 말은 애초에 손님이 직접 지정한 경우에나 성립하는데, 관행적으로 문 앞이 기본값처럼 쓰이는 순간 그 장소는 손님의 선택이 아니라 회사의 편의가 됩니다. 자신이 고르지 않은 장소에 놓인 상자의 분실까지 손님에게 입증하라는 것은, 위험을 알리지도 않고 넘긴 것입니다.
대안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무인 택배함, 편의점 거점, 경비실 보관 같은 방법은 이미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그 비용을 회사가 흡수하면 될 일을, 위험만 문 앞에 남겨 두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비용 아끼기입니다. 대안을 쓰지 않는 이유가 물량이라면, 그 물량이 만드는 위험까지 포함해야 비용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위험을 떼어 낸 비용은 비용이 아니라 전가입니다.
요구는 단순합니다. 문 앞 배송을 기본으로 삼으려면 분실 책임은 회사가 진다는 조건이 함께 걸려야 합니다. 책임 없이 편의만 가져가는 배송 완료는 완료가 아닙니다. 확인의 노동과 분실의 위험을 문 앞에 내려놓고 떠나는 관행은, 그 책임을 다시 주어야 비로소 배송이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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