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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은 클릭 몇 번으로 받아 놓고 해지는 전화 연결로만 받는 것은 구독을 파는 일이 아니라 끊는 것을 포기하게 만드는 일이다광장

해지를 어렵게 만드는 것은 서비스가 아니라 이탈을 막는 마찰 설계다.

박세미 필자2026년 11월 4일

OTT 플랫폼이든 뷰티 정기배송이든 헬스장 멤버십이든, 스마트폰 화면에서 구독을 시작하는 데는 몇 번의 터치면 충분합니다. 그런데 그 구독을 끊으려면 전화 연결을 요구하거나 메뉴 깊숙한 곳에 숨겨놓은 해지 버튼을 찾아내야 하는 서비스가 있습니다. 가입은 클릭 몇 번으로 받아 놓고 해지는 전화로만 받는 것은 구독을 파는 일이 아니라, 끊는 것을 포기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진입은 자유롭게 열어놓고 이탈만 구조적으로 막는 이 비대칭은,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맺은 계약이라는 허울 아래 실질적인 선택권을 빼앗는 장치로 작동하는 것이지요.

문제는 기술의 한계가 아닙니다. 앱 화면 하나로 즉시 결제 수단을 등록하고 구독을 시작하는 시스템이, 해지 절차만큼은 전화 상담 시간 안내와 대기 메시지로 소비자를 붙잡는다면 그것은 의도된 설계입니다. 고객이 귀찮아서 포기하고 결제를 유지하도록 만드는 마찰, 그것이 이 비대칭의 정체입니다. 가입 경로와 해지 경로 사이의 격차는 우연이 아니라 이탈을 지연시키려고 치밀하게 배치된 장벽입니다.

그 장벽의 높이는 일정한 패턴을 따르게 마련입니다. 가입은 앱 첫 화면 배너를 한 번 누르면 되고 결제 수단 등록까지 포함해도 1분을 넘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해지 메뉴는 설정 탭 안의 고객 지원 하위 메뉴까지 들어가야 비로소 보이지요. 전화 상담을 요구하는 서비스는 업무 시간 제한까지 덧붙여, 퇴근 후 해지하려는 소비자에게 다음 날 다시 연락하라며 하루를 더 벱니다. 이 단계별 마찰이 쌓이는 사이 월 결제 금액은 가계의 고정 지출로 자리 잡습니다.

해지 마찰은 사실상 가계에 부과되는 인플레이션입니다. 물가가 올라서가 아니라, 쓰지 않는 서비스의 결제를 멈추지 못하게 만드는 구조가 매월 일정액을 갉아먹기 때문입니다. 해지 관련 소비자 상담과 피해 구제 신청이 이미 접수되고 있다는 점은, 이 마찰이 참을 만한 불편이 아니라 제도가 개입해야 할 문제라는 뜻입니다. 청약철회권이란 소비자가 충동적으로 맺은 계약에서 되돌아날 권리를 보장하는 장치인데, 그 권리를 행사하는 경로 자체를 기업이 통제한다면 철회권은 문서 위에만 존재하는 권리일 뿐입니다.

계약 자유에는 철회의 자유가 포함됩니다. 가입한 방식과 같거나 더 쉬운 방식으로 해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는 단순한 편의 호소가 아니라 계약의 대등성을 회복하라는 최소한의 주장입니다. 가입 버튼이 3초면 해지 버튼도 3초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친절의 문제가 아니라 계약이 성립하는 조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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