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0조 쓰는데 빚비율은 떨어진다…2027 예산안 산수의 빈틈
내년 예산안은 이상하리만치 예쁘다. 총지출 820조9000억원으로 전년보다 12.8% 늘었는데, 정책브리핑이 배포한 '예산안 건강검진' 자료에서 관리재정수지는 GDP 대비 -3.9%에서 -0.1%로, 국가채무비율은 51.6%에서 48.3%로 떨어진다. 돈을 더 쓰면서 빚 비율도 줄어든다는 산법이 성립하는 순간, 국민은 계산서의 빈틈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반도체 풍년 위에 올린 계산서
기획예산처는 7월 28일 박홍근 장관 주재 브리핑에서 2027년 예산안과 미래대응기금 신설안을 함께 공개했다. 재원은 반도체 호황으로 불어난 세수다. 문제는 이 소득의 성격이다. 반도체 세수는 굴러 들어온 풍년이지 매년 반복되는 급여가 아니다. 그 위에 올린 지출은 상당 부분 되돌리기 어렵다. 분야별 배분이 이를 보여준다.
| 분야 | 규모 |
|---|---|
| 적극 복지 | 68.4조 원 |
| 미래 성장엔진(R&D·AI 등) | 62.8조 원 |
| 청년 성장단계별 지원 | 43.3조 원 |
| 국민 안전·평화 | 38.3조 원(+24.8%) |
| 국토 대전환·지방 성장 | 33조 원 |
기금이라는 이름의 창구 바꾸기
미래대응기금 45조4000억원이 핵심이다. 나라살림연구소가 16일 낸 보고서를 보면 기금의 52%인 23조6000억원은 기존 회계·기금에서 이관된 계속사업이다. 청년 계정 13조3300억원 중 8조8600억원이, 성장동력 계정의 65.8%가 이미 있던 사업이다. 아동기본수당·농어촌 기본소득처럼 매년 나가는 반복 지출도 기금에 실렸다. 지방 계정의 신규사업 9조1000억원도 지방교부세 감소분을 일부 메우는 대체재라 순증으로 보기 어렵다는 게 이 연구소의 판단이다.
성과 포장용 이관도 확인된다. 청년문화예술패스는 2024년 예산 170억원 중 24.9%만 집행하고 95억1000만원을 이월한 사업인데, 기금으로 옮기며 내년 예산이 7925억원으로 불어났다. 국민의힘 윤영석 의원실이 국정감사 자료로 공개한 내용이다.
숫자에서 빠지는 빚
적자성 국가채무는 올해 1025조2000억원에서 2030년 1312조3000억원으로 간다. 국민일보가 확보한 중기 전망이다. 여기에 통계 밖의 빚이 따로 쌓인다. 첨단전략산업기금채권 확대와 한미전략투자채권 신규 반영으로 국가보증채무가 늘어난다는 게 경향신문 보도(9월 6일)의 지적이다. 채무비율이 3.3%포인트 내려가는 화면 뒤에서 정부가 보증선 서 있는 빚은 별도의 항목으로 자라난다.
"한국 재정, 아직 건강하다"는 반론
반론은 만만치 않다. IMF 재정모니터의 2026년 총부채 전망에서 한국은 GDP 대비 54.4%로 독일(64.6%)·미국(125.8%)보다 낮다. OECD 통계에서 한국의 일반정부 재정적자는 GDP 대비 0.7%로 평균(4.6%)과 격차가 크다. 피치와 무디스가 재정운영을 긍정 평가했고, OECD 한국경제보고서(7월)는 확장재정이 민간소비 회복을 뒷받침했다고 봤다. 다만 같은 보고서가 단기 지원과 중기 긴축 병행, 저효율 보조금·세금감면 정리를 주문했다는 대목은 정부 홍보에서 자주 빠진다.
풍년에는 곳간부터 지어야
세수 풍년의 쓰임새가 정부의 우선순위를 드러낸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의 제언처럼 '큰 재정안정화기금, 작은 사업기금'이 재정 운영의 정석이다. 한시적 소득으로 영구 지출을 만들고 창구를 일반회계 밖으로 옮겨 결산 화면을 깔끔하게 만드는 지금의 설계는 이 정석을 거꾸로 걷고 있다. 반도체 사이클이 언제 꺾일지 아무도 모른다. 820조 계산서의 빈틈은 결국 미래의 세금 고지서로 이월된다.
분석 근거: 정책브리핑(korea.kr) 2027년 예산안 정책포커스 및 기획예산처 자료, 경향신문 미래대응기금 보도(2026.9.16)·주간경향 재정 분석(2026.9.9), 나라살림연구소 보고서, 국민일보 국가채무 전망 보도(2026.9.7), IMF·OECD 통계. 공개 데이터·보도에 근거한 분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