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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스스로 정한 AI 규제 시한을 16개월 밀어냈다

류근웅류근웅 기자· 2026. 9. 27. PM 3:04:06· 수정 2026. 9. 27. PM 3:04:15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AI 규제를 자임하던 유럽연합이 정작 시행을 코앞에 두고 핵심 조항의 발효일을 스스로 밀어냈다. 고위험 AI 시스템에 위험관리·적합성 평가 의무를 부과하는 EU AI법의 중심 조항이 올해 8월 2일 발효 예정이었으나, '디지털 옴니버스'라는 수정 입법으로 2027년 12월 2일까지 연기됐다. 규제의 문이 아니라 규제 제정자의 준비가 먼저 무너진 셈이다.

브뤼셀이 백기든 시행일

2025년 11월 19일 유럽집행위는 디지털 옴니버스 패키지를 발의하며 AI법 고위험 의무의 적용을 부속서 III 기준 16개월, 제품 내장형 AI는 2028년 8월까지 미뤘다. 유럽의회는 2026년 중 표결로 이를 확정했고, 7월 서명으로 연기가 확정됐다. 집행위는 2025년 7월까지만 해도 연기 가능성을 공식 부인했다가, 대형 기술기업들의 로비와 회원국 산업계 압박에 방향을 틀었다. 시행 기반인 표준·적합성 평가 체계가 늦어진 탓에 그대로 두면 법만 세우고 집행 못 하는 꼴이 된다는 게 명분이었다.

구분원래 시행일연기 후
고위험 AI(부속서 III)2026년 8월 2일2027년 12월 2일
제품 내장형 AI(부속서 I)2026년 8월 2일2028년 8월 2일
금지 조항·투명성 의무2025년 2월·2026년 8월그대로 시행

미뤄진 것은 시한이지 이빨이 아니다. 위반 시 최대 매출의 7% 또는 3,500만 유로의 벌금 체계는 그대로 남아 있어, 유럽 시장에 진출하는 기업엔 여전히 최대치의 규제 리스크다.

드라기 보고서, 이행은 15.7%

이 후퇴의 배경에는 경쟁력 위기가 있다. 마리오 드라기 전 이탈리아 총리의 경쟁력 보고서는 과잉 규제가 유럽을 미국·중국 뒤로 밀어낸다고 진단했지만,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가 2026년 9월 집계한 유럽정책센터(EPC) 트래커에 따르면 보고서의 383개 권고 중 완전 이행된 것은 7월 기준 15.7%에 그쳤다. 규제를 푸는 속도보다 규제를 다시 만드는 속도가 빠른 게 아니라, 둘 다 느리다는 뜻이다.

한국은 더 가벼운 법을 이미 돌리고 있다

한국은 올해 1월 22일 인공지능기본법을 시행했다. EU에 이은 두 번째 포괄 AI 규제로 꼽히지만 골격은 다르다. 고영향 AI에 위험성 평가와 투명성 의무를 물리되 적용 범위가 협소하고 벌칙 수위도 낮으며, 시행 후 1년의 유예기간을 뒀다. EU가 매출 7%를 걸고 확인 절차를 요구하는 것과는 무게가 다르다.

항목한국 AI 기본법EU AI법
시행2026년 1월 22일단계적(고위험 2027년 12월)
위험 분류고영향·생성형 중심4단계 위험 체계
최고 제재벌칙 수반이 제한적매출 7% 또는 3,500만 유로

반론: 연기가 능사는 아니다

시민사회와 유럽의회 일부는 연기가 규제 신뢰성을 훼손한다고 비판한다. 금지 조항과 투명성 의무는 올해 8월부터 시행 중이므로 법이 무력화된 것은 아니며, 16개월의 유예는 기업의 준비 시간이지 면책이 아니라는 반박도 가능하다. 실제로 집행위는 8월부터 AI법의 집행 체계를 가동했다고 밝혔다. 우려가 남는 지점은 따로 있다. 유예 기간이 '규제를 잘 만드는 시간'이 아니라 '로비의 두 번째 기회'로 쓰일 가능성이다.

기회는 규제 격차에서 나온다

한국 입장에서 이 국면은 계산이 필요한 판이다. EU 시장에 파는 제품엔 결국 브뤼셀의 기준을 맞춰야 하지만, 국내에서 AI 서비스를 만드는 사업자는 유럽 동료들보다 16개월 앞선 출발선에 서 있다. 유럽이 고위험 규제를 준비하는 동안 한국이 축적하는 도입 사례와 데이터가 자산이 되느냐, 느슨한 규제에 안주해 신뢰 없는 AI 생태계를 키우느냐는 이제 선택의 문제다. 규제의 무게가 아니라 그 아래에서 무엇을 만드는가가 향후 3년의 순위를 정한다.


분석 근거: 유럽집행위·EEAS AI법 시행 발표, Legal500 디지털 옴니버스 분석, Financial Times(2026.9.8.) 드라기 보고서 이행율 보도, Economic Times(2025.11.19.) 연기 결정 보도, 화우 법률사무소 한국 AI 기본법 시행령 분석. 공개 데이터·보도에 근거한 분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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