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로 얻은 당선의 값을 벌금 숫자 하나에 맡기는 것은 선거의 공정을 지키는 일이 아니라 허위사실의 값을 계속 깎는 일이다광장
재판이 매겨야 할 것은 형량의 숫자가 아니라 거짓 정보 속에 던져진 표의 값이다.
거짓말로 얻은 당선의 값을 벌금 숫자 하나에 맡기는 것은 선거의 공정을 지키는 일이 아니라, 허위사실의 값을 계속 깎아내리는 일입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선 허위사실공표 혐의 형사재판 2심 선고가 4일 나온다고 여러 매체가 보도하고 있습니다. 공직선거법상 당선인이 선거범죄로 벌금 100만원 이상을 받으면 당선무효 사유가 되며, 국민의힘이 보전받은 선거비용 397억원의 반환 여부도 이 판결에 달려 있다는 게 쿠키뉴스·뉴스핌 등의 보도입니다.
지금 모든 시선이 숫자에 꽂혀 있습니다. 벌금이 100만원을 넘을 것인가, 당선이 무효가 될 것인가, 397억원이 돌아갈 것인가. 그러나 재판이 매겨야 할 값은 숫자가 아닙니다. 한 유권자가 거짓 정보 속에서 표를 던졌다는 사실 자체입니다. 보도에 따르면 특검이 2심에서 당선무효형 유지를 요청했다 하는데, 이 요청이 숫자를 두고 다투는 데 그치지 않고 진실성의 훼손 자체를 문제 삼는 방향이어야 옳을 것입니다.
문제는 허위사실 공표의 대가가 벌금형이라는 열린 길에서 비롯됩니다. 이 길이 닫히지 않으면 다음 후보는 거짓말의 값을 미리 계산해 넣게 될 것입니다. 벌금 몇백만원, 선거비용 반환 몇백억원—이런 숫자는 선거를 치르는 쪽에서 감수할 비용으로 예산 항목에 올릴 수 있는 규모입니다. 한 후보의 허위 발언이 유권자의 판단을 왜곡하고, 그 왜곡된 표가 당선이라는 결과를 만들고, 그 결과가 397억원이라는 제도적 비용으로까지 이어지는 사슬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 전체를 한 사람의 형사책임으로 처리하면 사라지는 것은 사슬 전체의 문제이고, 끝점의 벌금 액수만 남게 됩니다.
벌금형은 거짓말의 정가표입니다. 가격이 정해진 거짓말은 금지가 아니라 거래입니다. 397억원 반환 쟁점의 본질도 피해 보전이 아닙니다. 왜곡된 경쟁을 되돌리는 일입니다. 선거 과정에서 진실성이 훼손되었다면 그것은 후보 개인의 법률 리스크가 아니라 유권자 집단의 권리 침해로 다뤄야 합니다. 지금 구조는 후보가 법정에 서고 벌금을 내는 것으로 사건이 정리되는데, 정작 거짓 정보를 받고 투표한 유권자의 표는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유권자의 권리, 그것이 빠져 있습니다. 선거범죄의 피해자를 유권자로 상정하지 않는 법 틀 안에서 재판부가 아무리 벌금을 높여도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특검이 당선무효형 유지를 요구한 것은 형량의 무게를 두고 한 말이겠지만, 진짜 쟁점은 그 무게가 유권자의 권리 회복과 연결되느냐입니다. 연결되지 않는 벌금은 후보에게는 비용 항목으로, 유권자에게는 돌려받을 수 없는 표로 남을 뿐입니다.
거짓말로 바뀐 한 표의 무게를 되돌릴 계산이 없다면, 그 재판은 공정을 지킨 것이 아니라 다음 거짓말의 견적서를 쓴 것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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