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질환 확진이 3년 반 걸리는 것은 병이 희귀해서가 아니라 의료 체계가 흔한 병만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다광장
평균 3.55년의 진단 지연은 희귀병 탓이 아니라 흔한 병을 상정한 체계의 실태다.
이 지연은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입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소병훈 의원이 질병관리청으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2025년 희귀질환 실태조사 운영 보고서'에 따르면, 환자가 증상을 처음 겪은 뒤 확진받기까지 평균 3.55년이 걸립니다. 희귀질환은 환자 수가 적어 진단이 어려운 병이 아닙니다. 진단으로 이어지는 사다리가 없어 환자가 그 아래서 3년 반을 기다리는 구조입니다.
지갑을 꺼내면 시간이 줄어듭니다. 같은 보고서에 따르면 월평균 가구소득 100만 원 미만 환자의 확진 소요 기간은 7.89년, 고소득층은 2.21년입니다. 격차가 3.6배에 이릅니다. 소득이 진단 속도를 정한다는 뜻입니다. 병의 중증도도 아니고 발현 시기도 아닌 가계부의 숫자가 확진 날짜를 정하는 체계에서, 저소득 환자가 7년 넘게 방치되는 일을 개인의 불운이라 부를 수 있겠습니까.
진단 인프라는 늘지 않았습니다. 전문 인력도 늘지 않았습니다. 의사가 의사에게 환자를 넘기는 의뢰 체계도 늘지 않았습니다. 병이 병을 늦게 만드는 게 아닙니다. 병을 찾는 경로가 끊겨 있어 지연이 생기는 것입니다. 동네 의원에서 대형 병원으로, 전문의에서 전문의로 이어져야 할 환자의 이동 경로가 설계되지 않으면, 3.55년은 환자가 견디는 시간이 아니라 체계가 방치한 시간이 됩니다.
더 아프게 만드는 자기모순이 있습니다. 정부가 14년째 운영하는 희귀질환 진단지원사업을 환자와 보호자 10명 중 6명은 존재조차 모른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지원이 필요한 사람에게 지원이 닿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예산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정보 전달망이 무너져 있는 것입니다. 치료제를 만들려는 움직임은 있어도, 그 약이 필요한 환자를 찾아내는 공공의 사다리는 14년째 제자리걸음입니다. 약이 개발되어도 진단받지 못한 환자에게 그 약은 닿지 못합니다.
지연을 개인의 몫으로 남겨두는 한 3.55년은 줄지 않을 것입니다. 확진까지 걸리는 시간을 의료 행정의 핵심 성과 지표로 삼고, 그 지표의 소득별 격차부터 좁히도록 설계해야 합니다. 의뢰 체계가 없으면 병을 아는 사람과 병을 앓는 사람 사이에 3년 반의 공백이 생기고, 그 공백을 돈으로 메우는 구조가 굳어집니다. 확진에 걸리는 시간이 곧 의료 체계의 성적표여야 하는데, 아직 그 성적표를 내는 사람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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