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두는 회원에게 위약금부터 매기는 것은 시설을 이용하게 하는 장사가 아니라 나가는 사람을 벌하는 방식이다광장
장기 이용권의 할인은 끊는 순간 사라지고 위약금만 남는다 — 이탈을 벌하는 계약 구조를 따져 묻는다.
그만두는 회원에게 위약금부터 매기는 것은 시설을 이용하게 하는 장사가 아니라 나가는 사람을 벌하는 방식입니다. 헬스장과 요가원, 필라테스 학원에서 몇 달 단위 개월권 계약이 흔하고, 이사나 부상 같은 사정으로 중도에 그만두려 하면 잔여 기간 환불에 위약금과 각종 공제를 얹는 사례가 반복해 보도되고 있습니다. 이용권 환불 분쟁이 소비자 상담 현장에서 꾸준히 접수되는 이 영역에서, 문제는 개별 사업자의 양심이 아니라 계약의 뼈대 자체에 새겨져 있습니다.
겉으로는 할인입니다. 오래 등록할수록 월 단가가 낮아진다는 안내에 회원은 긴 계약을 택하지만, 그만두는 순간 그 할인은 없던 것이 됩니다. 이미 다닌 기간까지 정가로 다시 계산해 차액을 빼고 남은 돈을 돌려주는 방식이 관행처럼 굳어 있다는 지적이 현장에서 나오는데, 이 구조를 뜯어보면 할인은 처음부터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사업자는 회원이 끝까지 다닐 경우의 값과 그만둘 경우의 값을 두 개 쥐고 있다가, 회원이 나가는 문을 통과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둘 중 비싼 쪽을 적용합니다. 참 정직한 장사입니다. 정가를 밝히는 시점만큼은 언제나 회원이 발을 뺀 뒤이니 말입니다. 할인이란 이름으로 미리 걷어 둔 이탈 비용을, 해지라는 사건이 닥쳐야 비로소 청구서로 바꿔 내미는 것이 이 계약의 실체입니다.
더 볼 것은 이 위험이 한쪽으로만 기울어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업자가 문을 닫으면 회원은 남은 기간의 값을 되돌려받을 길이 사실상 막히는 경우가 허다한데, 반대로 회원이 중도에 그만두면 위약금을 물어야 합니다. 계약이 중간에 끊길 위험은 양쪽에 똑같이 있는데, 그 위험의 값은 오직 소비자에게만 청구됩니다. 시설이 사라져도 소비자가 손해를 보고, 소비자가 사라지면 소비자가 벌금을 내는 셈입니다. 어느 쪽으로 계약이 깨져도 지는 쪽이 정해져 있는 계약을 우리는 공정한 약정이라 부를 수 없습니다.
법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닙니다. 방문 판매 등에 대해서는 청구철회 제도가 마련돼 있지만, 현장에서는 계약서에 서명했다는 이유로 환불이 거부되는 사례가 되풀이됩니다. 서명은 계약의 성립을 증명할 뿐, 불공정한 조항까지 정당으로 만드는 도장이 아닙니다. 제도가 있어도 사업자가 서명 한 장을 방패로 세우면 소비자는 분쟁 조정과 소송의 긴 문턱을 혼자 넘어야 하고, 대부분은 그 문턱 앞에서 포기하기 마련입니다. 사업자들이 이 포기율까지 계산에 넣고 있다고 의심하는 것이 과한 추측일까요.
고쳐야 할 곳은 분명합니다. 첫째, 잔여 기간 환불은 이용한 날짜만큼 일자로 계산하는 것을 원칙으로 세워야 합니다. 둘째, 위약금은 사업자가 실제로 입은 손해를 입증하는 범위 안으로 제한해야 하며, 정가 재계산식 소급 청구는 손해배상이 아니라 벌금이므로 걷어내야 합니다. 셋째, 폐업에 대비해 예치나 보증보험 같은 최소한의 안전망으로 잔여 이용권을 보장하는 장치를 의무화하십시오. 해지의 위험을 계약서 양쪽에 똑같이 나누는 것, 이것이 새로운 규제가 아니라 계약의 기본으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계약서에 서명하는 순간이 아니라 그만두는 순간에 진짜 값이 정해지는 장사라면, 그 값은 처음부터 계약서에 쓰여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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