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수조사를 거두는 자리에서 장관의 제안을 들먹이는 것은 정책을 접는 것이 아니라 책임의 주소를 옮기는 일이다광장
정책을 되돌리는 자리에서 장관의 '제안'을 들먹이는 순간, 철회의 설명은 책임 회피의 문장이 된다.
장관의 이름이 대통령의 입에서 먼저 나왔습니다. 농지 전수조사 논란이 거세지자 이재명 대통령이 이 정책의 출발점을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제안'이었다고 언급했다고 보도됐는데, 그 순간 논란의 무게중심이 정책 자체에서 책임의 소재로 옮겨갔습니다. 정책을 접는 자리에서 가장 먼저 나온 말이 누가 올렸느냐였다는 점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사건의 윤곽은 단순합니다. 정부가 농지 전수조사 계획을 발표했다가 농어민 반발에 부딪혔고, 투기 목적이 아닌 농지는 처분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사실상 물러선 상황입니다. 논란을 듣고 방향을 되돌리는 것 자체는 나무랄 데 없습니다. 그것이 여론이 작동한 것이고, 정치가 작동한 것입니다.
그러나 되돌리는 손이 어디를 가리키느냐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정책은 되돌아왔는데, 책임은 내려갔습니다. 대통령이 국민적 논란이 된 정책을 되돌린다면 그 설명은 대통령의 입에서 나와야 하는데, 지금 형편은 정반대입니다. 누가 제안했느냐와 누가 결정했느냐는 다른 질문인데, 후자를 전자로 바꿔치기하는 순간 책임의 주소가 대통령실에서 세종로 부처 사무실로 옮겨 갑니다. 제안은 결정이 아닙니다.
수순을 따라가 보면 그림이 더 선명해집니다. 대통령의 발언이 보도되고, 국민의힘은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비열함이라는 취지로 반박했으며, 송미령 장관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판단이었고 농정의 미래를 위해 선택한 길이라는 취지로 다시 설명했습니다. 해명, 반박, 재해명. 그 사이에 정작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말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장관의 입장도 이해가 못 할 바는 아닙니다. 대통령이 자신의 이름을 거론한 마당에 침묵할 수도 없고, 결정권자를 거스를 수도 없으니 결국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중립적인 말로 버티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구도에서 장관은 정책의 담당자이기 이전에 방패로 쓰이고 있습니다. 조사를 추진하게 된 경위를 두고 장관이 거듭 해명하는 동안, 그 경위를 승인한 사람은 침묵합니다.
야당도 이 사안을 국감과 규탄 집회의 재료로 밀어붙일 태세입니다. 농지조사와 함께 레버리지 ETF 도입까지 '실책' 목록에 올려 정권을 규탄하겠다는 계획이 보도됐습니다. 그러나 야당의 공세가 아무리 거세져도 풀어야 할 질문은 하나입니다. 전수조사를 결정하고, 되돌리고, 지금은 그 경위를 두고 여야가 다투고 있다는 사정 자체가 책임자가 분명하지 않다는 증거 아닙니까.
요구는 단순합니다. 정책을 되돌린 책임자가 직접 무엇이 잘못됐는지 밝히십시오. 장관이 제안했든 부처가 기획했든, 국정 전반을 책임지는 자리에 앉은 사람이 "송 장관이 제안해서 진행한 정책"이라는 말로는 아무것도 설명되지 않습니다. 정책 철회는 문장 하나로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그 정책을 왜 밀었고 왜 무릎 꿇었는지를 책임자의 언어로 풀어내야 비로소 끝납니다. 대통령의 입이 닫혀 있을수록 장관의 입만 바빠지는 이 구조는, 다음 정책이 흔들릴 때마다 똑같이 반복될 것입니다.
(투기 아닌 농지 처분하지 않겠다는 정부 입장과 장관 제안 발언은 각각 단일 보도에 근거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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