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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대 예산안에서 쓸 돈만 세고 갚을 돈은 세지 않는 것은 내일을 준비하는 재정이 아니라 미래세대에게 백지수표를 쓰는 일이다광장

820조 예산안 논쟁에서 빠져 있는 질문 — 이 빚을 갚는 사람은 누구인가.

정서린 필자2026년 11월 2일

지출이 가장 많은 예산이, 정작 갚을 돈은 가장 적게 계산하는 예산이 되었습니다. 국회에 제출된 내년도 정부 예산안은 총지출 기준 사상 최대인 820조9000억 원에 이르고, 국가채무도 821조 원에 달할 전망입니다. 정부는 반도체 경기 호황을 근거로 재정 확장을 정당화하고, 야당은 방만한 지출과 선심성 현금 살포를 비판하며 예산 심사 속도와 범위를 두고 공방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양측 모두 지출액 숫자만큼은 정확히 세면서, 그 돈을 누가 어떻게 갚을지에 대한 경로에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박홍근은 107조 원의 지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며 이를 역대 최대 규모라고 자랑했습니다. 구조조정 액수가 늘었다는 것은 그만큼 지출의 뼈대가 두꺼웠다는 뜻입니다. 미래대응기금의 여유자금 104조 원을 국가채무 감축에 쓰겠다는 정부 방침은, 반대로 말하면 그 기금이 지금까지 빚을 갚는 데 쓰이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5년 공공부문 계정 잠정치에서 공공부문 적자가 사상 최대인 83조 원에 달했다는 사실까지 더하면, 지출을 줄이겠다는 말과 빚이 늘어난다는 숫자가 정반대로 움직이는 구도가 선명해집니다.

이 예산안은 정부의 통장이 아니라 세대 간 백지수표입니다. 쓸 돈은 올해 표를 행사하는 세대가 결정하지만, 그 빚의 이자와 원금을 갚을 책임은 투표용이 없는 세대가 떠안습니다. 지출 확대의 필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그 재원이 빚이라면 상환 부담은 예산안에 서명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재명 정부가 반도체 초호황을 명분으로 821조 원 규모의 예산을 편성하면서도, 그 호황의 과실을 빚 상환이 아니라 현금성 지출에 우선 배분하는 방식은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넘기는 포퓰리즘의 전형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성장과 민생을 함께 챙긴다며 지출 확대를 정당화하는 동안, 국가채무는 매년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습니다.

재정이 세대 간 약속이라면, 예산 심사의 본분은 지출액을 승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갚을 돈의 경로까지 함께 심사하는 것입니다. 지출 총량을 두고 여야가 속도를 다투는 사이, 상환 계획이라는 본질적 항목은 어느 쪽 의제에도 올라 있지 않습니다. 투표용지가 없는 세대의 서명 없이 그들의 이름으로 써 내려가는 수표는, 어떤 호황으로도 결제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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