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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 일정에 심사를 맞추는 순간 금융감독원은 투자자를 지키는 기관이 아니라 상장을 도와주는 창구가 된다광장

상장 일정에 심사를 맞추는 관행은 감독의 순서를 뒤집는 일이다.

백영우 필자2026년 10월 22일

상장 일정에 심사를 맞추는 순간, 금융감독원은 투자자를 지키는 기관이 아니라 상장을 도와주는 창구가 됩니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같은 개별 주식의 등락을 일정 배율로 확대하는 고위험 상품으로, 투자원금 전액 손실 가능성이 있는 구조입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국정감사에서 이 상품의 심사 과정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했습니다. 연합뉴스 취재에 따르면 이 원장은 상장 일정을 맞추기 위해 심사를 서둘렀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습니다.

심사라는 것은 본래 위험을 헤아리는 절차입니다. 고위험 상품이 시장에 나가기 전에 구조적 결함이 있는지, 투자자 보호 장치는 적절한지 따지는 것이 심사의 존재 이유이고, 그래서 심사 기간은 상품의 위험도에 비례해야 합니다. 일정이 먼저 정해져 있고 심사가 그 틀에 끼워 맞춰지면, 심사는 검증이 아니라 승인 도장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일정 준수를 심사의 기준으로 내세운 순간, 감독원은 스스로 본령을 버린 셈입니다.

숫자가 이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이 국감에서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일반 ETF의 상장 소요 기간은 평균 62일이고 대표지수형 상품은 43일입니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는 이보다 짧은 기간에 심사를 마쳤습니다. 위험도가 가장 높은 상품이 가장 빠른 심사를 받았다는 뜻입니다. 이찬진 원장은 핵심 결정 주체를 묻는 질문에 "정부와 당국 협의로 결정된 사안"이라며 특정 인물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심사를 서둘렀다는 사실 자체는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참 일관된 태도입니다. 책임질 사실은 인정하되 책임질 사람은 밝히지 않는 방식만큼은 한 치의 흔들림이 없으니 말입니다.

이 상품이 시장에 나간 뒤 개인투자자의 피해 논란이 커지고 있는 것은 구조적 필연입니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은 기초 자산의 변동폭을 배율로 확대하는 구조이므로, 시장이 요동치는 순간 투자자의 손실도 그 배율로 불어나기 마련입니다. 심사가 충분한 기간을 확보하지 못한 채 일정에 쫓겨 승인 도장을 찍었다면, 그 뒤에 발생한 손실에서 심사 단축이 차지하는 비중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누워서라도 막았어야 했다"는 이찬진 원장의 과거 발언은, 막지 못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확인하는 것입니다.

국민의힘은 이 사안과 관련해 증시 파탄 특검과 국정조사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정점식 원내대표는 이찬진 원장이 졸속 심사를 인정한 만큼 특검으로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특검은 정치적 대립의 소모가 크고 결론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감독 당국이 심사 경과와 절차 기록을 스스로 공개하고 책임을 밝히는 것이 특검보다 먼저입니다. 상장 일정보다 검증이 우선인 절차로 되돌리고, 심사가 서둘러진 경위를 투명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일정에 맞춘 심사가 남긴 상처를 특검이 메울 수 없다면, 적어도 그 심사가 어떻게 서둘러졌는지부터 밝히는 것이 감독기관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책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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