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 창구를 줄이고 손님을 앱으로 밀어 내는 것은 시대의 변화가 아니라 상담의 비용을 통장 주인에게 떠넘기는 일이다광장
창구를 닫아 아낀 인건비는 은행에 남고, 앱을 배우는 시간과 금융 소외의 부담은 고객의 몫이 된다.
은행이 창구를 줄이고 손님을 앱으로 밀어 내는 것은 서비스 형태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계약을 이행할 의무를 고객에게 떠넘기는 일입니다. 창구 이용 시간을 제한하고 상담 예약제를 도입하며 무인 지점을 늘리는 은행들의 움직임이 이어지면서 사람이 직접 손님을 맞는 자리가 사라져 가고 있는데, 은행은 이를 비용 절감이자 고객 편의라는 이름으로 설명합니다. 그러나 그 설명의 전제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은행이 내세우는 논리는 단순합니다. 디지털 전환은 시대의 흐름이고 앱을 통한 거래는 빠르고 효율적이라는 것입니다. 굳이 지점에 가서 줄 설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자기 돈을 움직일 수 있다는 설명이지요. 참으로 고객을 위하는 발상입니다. 다만 그 편의가 고객의 것이 아니라 은행의 것인 점만 빼면 말입니다. 절감된 인건비는 은행의 수익으로 남고, 앱을 배우고 익히며 실패를 겪는 시간의 부담은 고객에게 돌아갑니다. 은행은 비용 구조를 바꿔놓고 그 비용을 덜게 된 당사자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습니다. 편의를 말하면서 부담을 숨기는 것은 설명이 아니라 포장입니다.
더 깊은 문제는 이 과정에서 자기 돈에 접근하는 권리가 조건부로 바뀐다는 데 있습니다. 돈을 찾고 이체하고 해지하는 일은 고객의 권리이고, 은행은 그 권리를 이행할 의무를 진 당사자입니다. 그런데 창구가 사라지면 앱을 다루지 못하는 사람, 기기가 낯선 사람, 고령자와 장애인은 자기 돈에 손을 대는 길 자체가 막힙니다. 은행은 앱이 대안이라고 말하지만, 앱을 쓸 수 없는 사람에게 대안이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고객의 기기 활용 능력에 달려 있다면, 그것은 권리가 아니라 자격 시험입니다.
은행이 빠뜨린 계산이 하나 있습니다. 창구를 유지하는 인건비만큼, 창구를 닫아 생기는 금융 소외의 비용도 함께 계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돈을 찾지 못해 겪는 시간의 손실, 가족이나 지인에게 대신 처리를 부탁하며 감수하는 위험과 수치심, 금융 거래 자체에서 밀려나 쌓이는 격차를 화폐 단위로 환산하면 그 값은 결코 가볍지 않을 것입니다. 은행이 비용이라 부르는 것은 인건비뿐이지만, 사회가 치르는 비용은 그보다 훨씬 큽니다.
디지털 전환은 강제가 아니라 선택이어야 합니다. 앱이 편한 사람은 앱을 쓰면 되고, 창구가 필요한 사람은 창구를 쓰면 되는 것입니다. 한쪽을 닫아버리고 다른 쪽만 남기는 것은 전환이 아니라 단절입니다. 자기 돈에 손을 뻗는 길이 은행이 정해준 시간과 화면 안에만 허락될 때, 예금이라는 이름은 남되 예금주의 권리는 사라진 은행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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