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사유를 밝히지 않고 대법원장의 퇴장을 거롯는 것은 견제가 아니라 압박이다광장
사유 없이 대법원장 탄핵을 거롯는 것은 견제 장치를 압박 장치로 바꾸는 일이다.
김인환 필자2026년 10월 15일탄핵의 사유를 밝히지 않은 채 상대의 퇴장을 거론하는 것은 견제가 아니라 압박입니다.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대표가 조희대 대법원장의 대법관 재제청 거부와 관련해 자진 사퇴 인내선이 무한대는 아니다라며 사퇴를 촉구한 데 이어 탄핵 가능성까지 시사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같은 당 김의견 의원은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싫든 좋든 조희대 탄핵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고, 박균택 의원도 재제청 거부가 계속될 경우 탄핵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대법원장이 법원의 결정을 유지하는 상황에서, 그 결정에 불복하는 세력이 대법원장의 자리를 노리는 구도가 만들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탄핵은 헌법 기관의 직무 수행에 명확한 사유가 있어야 비로소 시작하는 절차입니다. 그런데 조 대법원장에게 요구되는 것은 특정 위법행위에 대한 책임 추궁이 아니라 '그만두는 게 낫다'는 권고이고, 사퇴 압박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탄핵 카드를 꺼내겠다는 흐름입니다. 헌법이 정한 사유 없이 퇴장을 전제로 탄핵을 거론하는 것은 제도 안의 통제가 아니라 제도 밖의 협박에 가깝습니다. 김 대표 본인도 한때 조 대법원장 탄핵에 대해 "국민의 이해와 설득이 중요하다"며 신중하게 말한 바 있습니다. 지금의 수위 상향은 그 설득의 과정을 건너뛴 것이 아니겠습니까.
흐름을 보면 수위는 단계적으로 올라온 것입니다. 김재연 의원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 추진을 공식 선포한 데 이어 박균택 의원이 조 대법원장 탄핵 가능성을 제기했고, 김민석 대표가 모든 방안을 검토하겠다며 탄핵을 포함한 조치를 시사했으며, 국감 증인 채택 추진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퇴 권고에서 탄핵 시사로, 탄핵 시사에서 증인 소환으로, 압박의 단계가 올라갈수록 정작 사유의 내용은 채워지지 않습니다. 카드는 커지는데 카드 밑에 깔린 근거는 제자리인 셈입니다.
이 구도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예의나 태도가 아닙니다. 야권 일부에서 조 대법원장에게 존칭을 붙이지 않은 태도를 문제 삼기도 했지만, 본질은 따로 있습니다. 판결을 내리는 쪽이 절차와 근거로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쪽이 판사의 자리를 노리는 방식으로 법의 위계를 뒤집으려 한다는 것, 그것이 쟁점입니다. 재판 결과에 불복할 때마다 법원 수뇌부의 퇴장을 거론한다면, 법관은 판결이 아니라 정치적 압력을 기준으로 결론을 내리게 될 것입니다.
조 대법원장의 판단에 불복하려면 절차와 근거로 답하십시오. 탄핵 카드를 압박 수단으로 쓰는 정당은 그 카드를 탁자에 올리는 순간 자기 정당성도 함께 걸어야 합니다. 카드를 올린 쪽이 먼저 자기 패를 드러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지 않습니까. 탄핵은 한 사람을 내보내는 절차가 아니라 그 절차를 시작한 사람의 자격을 묻는 절차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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