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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0조 예산의 두 얼굴…채무비율을 끌어내린 건 정부가 아니라 반도체다

류근웅류근웅 기자· 9/15/2026, 7:04:42 PM· Updated 9/15/2026, 7:04:52 PM

820조9000억 원. 9월 1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2027년 예산안은 사상 처음 800조를 넘었고, 올해보다 93조 원(12.8%) 늘어나는 증가율은 2009년 금융위기 당시의 10%를 넘어 역대 최대다. 이상한 건 다음 숫자다. 나랏빚은 처음으로 1500조 원을 넘는데, 정부가 내놓는 재정건전성 지표는 반대로 좋아진다. 이 예산안은 지금 두 개의 얼굴을 하고 있다.

5년이 13년을 따라잡는 속도

이재명 정부 5년(2026~2030년)의 지출 증가 폭은 331조9000억 원으로 집계된다. 박근혜·문재인·윤석열 정부 13년의 증가 폭(347조9000억 원)에 버금가는 규모다. 정부 중기 재정운용계획상 총지출은 연평균 8.4%씩 불어나 2030년 1005조2000억 원에 닿는다.

지표2026 본예산2027 예산안변화
총지출727.9조 원820.9조 원+93조 원 (12.8%)
국가채무1413.8조 원1519.8조 원+106조 원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51.6%48.3%-3.3%p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3.9%-0.1%+3.8%p

비율을 끌어내린 건 지출이 아니라 세수다

정부 추계로 내년 국세수입은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사상 처음 500조 원을 넘고, 총수입은 30.4% 늘어난다. 채무비율 하락은 지출을 줄여서가 아니라 분자(빚)보다 분모(GDP)가 빨리 커서 나온 숫자다. 초과세수로 빚을 갚는 대신 162조 원 규모 미래대응기금에 쌓는 구조라는 게 정부 설명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재정 개선이 "지출 통제가 아닌 세수 증가에 기인한 것"이라고 짚었다. 국세수입이 5년간 연평균 13.4% 늘어난다는 추정이 이 계획 전체의 발판인데, 법인세는 반도체 업황과 함께 움직이는 순환세수라는 점이 약점이다.

한 번 늘린 현금은 줄일 수 없다

증가분의 적지 않은 몫이 '결혼하면 100만 원', '첫째 아이 출산 시 1000만 원' 같은 현금성 지원이다. 서강대 허준영 교수는 "현금 지원은 한 번 늘리면 줄이기 어려운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성대 김상봉 교수는 반도체 업황이 하향 국면을 맞는 시점에서 이만큼 총지출을 늘리면 재정 적자 폭이 불어날 수 있다고 봤다. 세금은 줄어도 지출은 남는다 — 이것이 820조의 진짜 레버리지다.

"1000조에 놀랄 일 아니다", 반대 방향의 반론도 있다

기획예산처 박창환 예산총괄심의관은 "GDP 대비 재정지출은 OECD 평균이 42%, 미국이 37.7%인데 한국은 35% 수준"이라며 "1000조 원에 놀랄 게 아니라 더 늘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재정투자가 성장을 만들고 성장이 재정기반을 튼튼히 한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다. 반대 방향에선 한겨레가 "정부 예산은 12% 늘었는데 보건복지부 예산은 8.2%에 그쳤다"며 복지가 후순위라고 짚었다. 규모를 두고 벌이는 양쪽 논쟁이 똑같이 가리키는 지점은 하나다. 이 예산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숫자가 분명하게 말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질문은 크기가 아니라 탄력성이다

820조라는 액수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500조 세수라는 낙관적 가정 위에 현금성 지출이 영구히 자리 잡는 구조다. 국회는 9월 3일 제출된 이 예산안을 심사하며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반도체 사이클이 꺾이는 해에 이 지출표를 누가, 무슨 근거로, 어디부터 줄일 것인가. 그 답이 없다면 채무비율 48.3%는 다음 불황에서 곧바로 되돌아갈 숫자다.


분석 근거: 정책브리핑(기획예산처), 조선일보, 한겨레, 뉴스1,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개 데이터·보도에 근거한 분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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