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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0조 늘렸는데 적자가 사라진다? 반도체 세수 파도 위의 예산

류근웅류근웅 기자· 2026. 10. 4. PM 7:05:05· 수정 2026. 10. 4. PM 7:21:14

820조 9천억 원. 2027년 예산안은 사상 처음으로 800조 선을 넘었고, 93조 원(12.8%) 증가율은 역대 최대다. 이상한 건 그다음 숫자다. 지출이 이렇게 뛰는데도 정부가 내건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GDP 대비 0.1%에 그친다. 마법이 아니다. 반도체와 코스피가 만든 세수 파도 위에 지출을 얹었을 뿐이다.

적자를 지운 건 증세가 아니라 호황이다

2025년 국세수입은 373조 9천억 원이었다. 올해 재추계치는 478조 6천억 원으로 1년 만에 104조 원이 늘었고, 최종예산보다 63조 원 더 걷히는 역대 최대 초과세수가 예상된다. 주인공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법인세와 증시 활황이 몰고 온 거래 관련 세금이다. 정부는 내년 국세수입을 584조 4천억 원으로 잡았다. 올해 추경 포함 실적보다 169조 원을 올려잡은 수치다. 세금을 올린 게 아니라, 사이클이 좋은 해의 세금을 기준으로 쓸 돈을 정한 것이다.

지출은 남고, 세수는 변한다

정부가 스스로 짠 국가재정운용계획이 이 예산의 약점을 먼저 보여준다. 관리재정수지는 내년 -0.1%에서 2028년 -1.5%, 2029년 -2.5%, 2030년 -2.9%로 다시 벌어진다. 국가채무 비율도 2027년 48.3%로 한 번 내려간 뒤 2030년까지 다시 상승한다. 반도체 사이클이 꺾이는 순간 820조로 굳어진 지출 구조는 그대로 남고 세수만 빠져나간다. 호황기 세수를 영구 지출로 바꾸는 것이 이 예산의 본질이다.

연도관리재정수지(GDP 대비)국가채무 비율
2026년(확정)-3.9%51.6%
2027년(예산안)-0.1%48.3%
2028년(전망)-1.5%재상승 반전
2030년(전망)-2.9%상승 지속

국회는 삭감 능력을 이미 시험받았다

지출 통제의 마지막 관문은 국회다. 그런데 작년 이재명 정부 첫 예산 심사에서 국회가 순삭감한 금액은 약 1천억 원, 본예산의 0.01%다. 감액 9조 3천억 원과 증액 9조 2천억 원을 맞바꾼 끝의 결과였다. 올해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삭감 심사와 함께 증액 심사까지 병행한다. 820조가 국회를 거치며 커질 가능성은 있어도 줄어들 가능성은 낮다.

반론: 채무 비율은 오히려 내려간다

정부 논리에 근거가 없지 않다. 통합재정수지는 59조 9천억 원 흑자로 돌아서고, 국가채무 비율은 51.6%에서 48.3%로 3.3%포인트 내려간다. 국고채 발행 총량은 222조 8천억 원으로 전년보다 2조 9천억 원 줄었고 만기상환을 뺀 순증도 13조 1천억 원 감소했다. AI·반도체 투자가 다음 세대의 세수원을 키운다는 성장재정 논리도 성립한다. 단년도 숫자만 보면 재정은 나빠지지 않았다.

항목2026년2027년(안)변동
총지출727.9조 원820.9조 원+93조 원
국세수입478.6조 원(재추계)584.4조 원(추정)+105.8조 원
국고채 순증109.4조 원96.3조 원-13.1조 원

파도가 빠지면 남는 것

초과세수는 춥지 않은 겨울이 아니라 시험이다. 세수가 104조 원 늘어난 해에 지출을 93조 원 늘리면, 세수가 평균으로 돌아가는 해의 부담은 그만큼 커진다. 건전한 재정의 원칙은 호황기에 채무를 갚는다는 것이고, 이 예산안은 그 반대 방향으로 걷는다. 12월 국회 통과 전에 물어야 할 질문은 하나다. 반도체 한 파도로 800조를 건 나라가, 파도가 잦아든 해에 무엇을 팔아 무엇을 갚을 것인가.


분석 근거: 기획재정부 2027년 예산안·국가재정운용계획, 중앙일보(2026.8.23), 전자신문(2026.9.30), 연합인포맥스(2026.9.1), 국민일보(2026.9.18), 더스쿱 보도. 공개 데이터·보도에 근거한 분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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