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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값의 합계를 계산대에서야 알려 주는 것은 정성 어린 상담이 아니라 비교를 막는 설계다광장

부품별로 쪼개진 채 늦게 완성되는 안경값 가격표는 비교를 막는 장치다.

모민철 필자2026년 10월 14일

제값을 숨기는 진열대

안경값을 알려면 대부분 계산대까지 가야 합니다. 진열대에는 프레임 값이 붙어 있지만 렌즈는 난시 여부, 자외선 차단 코팅 같은 옵션이 하나씩 붙을 때마다 견적이 달라지고, 최종 합계는 점원이 계산기를 두드린 뒤에야 나옵니다. 그 순간 소비자가 받는 것은 상품이 아니라 통보입니다.

상담이 끝나기 전까지는 어느 옵션이 얼마인지, 기본 렌즈만 낀다면 얼마인지조차 알려주지 않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정성이 아니라 정보의 배분이, 판매자에게만 유리하게 짜인 구조입니다.

이 설계의 진짜 효과는 매장 밖에서 나타납니다. 같은 처방, 같은 프레임을 들고 매장을 옮기면 합계가 달라집니다. 그런데 그 차이를 미리 알 방법은 없습니다. 전화를 걸어도, 홈페이지를 뒤져도 기본 합계가 나오는 경우가 드물고, 결국 소비자는 매장을 직접 돌아 견적을 뽑아야 합니다. 비교하려면 시간을 내야 하고, 발품을 팔아야 하고, 매장 안에서 점원과 마주 앉아 견적서를 받아야 합니다. 말하자면 이 시장은 가격 비교 행위 그 자체에 비용을 물리는 구조입니다. 경쟁이 가격을 낮춘다는 건 비교가 쉬울 때의 이야기인데, 비교에 드는 비용이 워낙 크면 소비자는 그냥 그 자리에서 사고 봅니다. 가격 경쟁이 작동하지 않는 시장에서 높아지는 것은 가격이고, 낮아지는 것은 선택의 질입니다.

이런 지적이 새로운 것도 아닙니다. 감독기관과 소비자 단체가 안경 가격 정보는 비교하기 어렵다는 문제를 여러 차례 제기해 왔습니다. 오래 알려져 있었는데도 고쳐지지 않았다는 점이 오히려 이 사안의 성격을 보여줍니다. 이건 불량 업자 한두 명의 문제가 아니라 업계 전반이 함께 묵인해 온 거래 관행이라는 뜻입니다. 관행은 스스로 바뀌지 않습니다. 관행이 바뀌는 건 소비자가 비교 없이는 사지 않겠다고 하거나, 제도가 비교할 수 있게 강제할 때뿐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거창한 규제가 아니라 최소한의 표기입니다. 기본 렌즈를 낀 합계와 대표 옵션의 단가를, 계산대가 아니라 진열 단계에서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프레임 값 옆에 기본 렌즈 포함 합계, 난시 보정 추가 비용, 자외선 차단 추가 비용을 적은 표 한 장만 붙어 있으면 됩니다. 그러면 소비자는 매장을 돌지 않고도 비교할 수 있고, 매장은 가격으로 경쟁하게 됩니다. 상품의 질로, 상담의 실력으로 겨뤄야 할 사업자가 가격을 숨기는 것 말고는 내세울 것이 없다는 건 그 자체로 부끄러운 일 아니겠습니까.

선택지가 여러 개라고 해서 선택이 자유로운 게 아닙니다. 합계를 알 수 없는 진열대 앞에서 소비자가 하는 일은 비교가 아니라 제비뽑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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