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5400이 무너진 것은 시장이 갑자기 변한 것이 아니라 실행되지 않은 공약을 시장이 먼저 정산한 결과다광장
지수 급락의 원인을 시장 탓으로 돌리기 전에 실행되지 않은 공약부터 세어야 한다.
증권사 창구의 전광판이 아니라 정부 발표문에서 지수가 떨어졌습니다. 이틀 연속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되고 코스피가 장중 5400선까지 밀린 요즘 증시를 두고, 원인을 중동발 악재와 환율에서만 찾으려는 시각이 많습니다. 하다못해 시장 안쪽의 숫자를 들여다보면 사정이 다릅니다. 이 지수를 여기까지 끌어올린 것도, 여기서 떨어뜨린 것도 같은 두 종목이었습니다.
지난 상승 구간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종목이 지수 상승에 기여한 비율은 99%에 달했습니다. 올라갈 때 시장 전체가 아니라 두 개의 대형주가 업고 올라갔다는 뜻입니다. 그 구조가 뒤집히면 어떻게 되는지는 이미 보았습니다. '검은 화요일'이라 불린 날 SK하이닉스는 전장보다 33만5000원, 15%가 넘게 무너지며 역대 최대 폭락을 기록했고, 시총 상위 종목들이 줄지어 급락하며 지수 전체를 끌고 내려갔습니다. 두 종목이 99%를 만들었다면, 두 종목의 하락은 99%의 하락으로 되돌아오기 마련입니다.
문제는 이 와중에 정부가 시장에 내놓은 것이 숫자가 아니라 회의실이라는 점입니다. 국회에서는 '레버리지 노답 삼형제'라는 말이 나올 만큼 금융당국 인사들이 질타를 받았고, 야당은 김용범·이억원·이찬진 등 관련자들의 즉각 경질을 촉구했습니다. 정부가 꺼낸 대응은 '증시 특례위' 구성 논의입니다. 발표된 세제 개편도, 자본시장 규제 손질도 집행되지 않았는데, 그 실행 부재를 심의할 새 위원회부터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위원회는 또 하나의 공약일 뿐입니다.
이 정부의 시장 담론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돌아보면 아이러니가 선명해집니다. 코스피가 8000선을 넘었을 때 이를 한국 자본시장의 '비정상 정상화' 결과라 분석하고, 9000을 앞두고서야 자화자찬할 때가 아니라고 정부를 지적했던 사람이 바로 이재명 대통령입니다. 정상화를 말하던 눈이라면 지금 5400선이 무엇의 정산인지도 읽어야 합니다. 시장은 정부가 발표한 공약을 수치와 일정이 붙기 전에 이미 호가에 올려둡니다. 그리고 약속한 날짜에 집행이 없으면, 미이행분을 지수에서 그대로 차감해 버립니다. 지금의 폭락은 시장이 변해서가 아니라 정부 발표문의 미결제 잔고가 만기를 맞은 결과입니다. 골드먼삭스가 한국 증시의 목표치를 대폭 끌어내렸다는 보도도 같은 결을 따라갑니다. 외국인 자금이 보는 것은 하락률이 아니라 약속의 결제 능력입니다.
그런데 특례위를 새로 만드는 일은 무엇입니까. 정산된 미이행분을 갚는 것이 아니라, 이행 시기도 내용도 불명확한 약속 장부를 한 권 더 발행하는 일입니다. 시장은 그 새 장부에도 호가를 매길 것이고, 집행이 늦어지는 만큼 또다시 차감할 것입니다. 발표, 보류, 재검토, 위원회. 이 순서가 반복될 때마다 떨어지는 지수만 누적될 뿐입니다.
지수를 지키는 일은 새 제도 만들기가 아니라 이미 서명한 약속의 결제입니다. 세제 공약의 집행 일자와 시장 규제 손질의 확정 내용을 숫자로 시장 앞에 내놓으십시오. 시장이 두 번째 정산을 시작하기 전에 말입니다.
REBUT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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